한국은행, 기준금리 0.5%포인트 전격 인하금융시장 안정, 실물경제 파급 효과 미지수금리 실효하한 근접…통화정책 부작용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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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0%대 금리 시대'를 맞이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공포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뒤흔든 결과다.

    그러나 이번 금리 인하가 사전 기대감을 형성했고 예상을 뒤엎는 수준이 아닌 만큼 경기부양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전날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0.75%로 0.5%포인트 인하했다. 종전 기준금리가 1.25%로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으나 0%대로 더 내려앉았다.

    한은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2년 만에 임시 금통위를 열어 큰 폭의 금리 인하에 나섰다는 것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충격이 금융위기 당시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주열 총재는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전 세계로 퍼지면서 그 영향도 장기화할 것으로 봤다"며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이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차입비용을 가능한 한 큰 폭으로 낮출 필요가 있어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실물경제와 금융안정에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요동치는 금융시장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어도 실물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리 인하 파급경로가 예전 같지 않은 점도 발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도 당시에는 금융시장이 리스크였기 때문에 통화정책이 효과가 있었으나 현재는 보건 이슈로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는 만큼 긍정적 영향이 적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가파르게 퍼져 수요는 물론 공급 측면의 충격을 야기하고 있어 기존의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얼마 남지 않은 통화정책 여력에 대한 우려로 불안심리 불씨가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실효하한으로 추정되는 0.50~1.00% 수준에 다다랐다. 실효하한은 비(非)기축통화국이 기준금리를 0%로 내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최저 기준의 금리 하한선을 말한다.

    이 총재는 "실효하한 밑으로 금리를 내리는 게 어렵지만, 실효하한은 고정된 게 아니라 국내외 금융시장 변화와 주요국 정책금리 변화 등에 따라 가변적"이라고 언급했다. 미국 등 주요국 기준금리가 모두 내려간 만큼 실효하한이 변동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실효하한을 고려했을 때 한은이 금리 인하 카드를 거의 소진한 만큼 향후 자산매입 확대나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해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은은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30조원으로 5조원 증액하고 추가로 금융중개대출 금리(0.25%)를 0.5%포인트 인하했으며, 한은 대출시 적용하는 적격담보증권의 범위도 특수채에 이어 은행채를 포함해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 기반을 마련했다.

    담보증권 범위를 확대한 것은 채권 매입에 나설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앞으로 추가될 수 있는 정책은 펀드 조성 등이 있다. 한은은 금융위기 당시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은행자본확충펀드를 각각 2조1000억원, 3조3000억원 조성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금리 인하로 기준금리가 실효 하단에 도달한 만큼 향후 통화정책은 비전통적 수단에 맞춰질 것"이라며 "회사채 시장 등 자금경색 시에는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펀드를 통해 민간의 채권 매입에 나서는 채권시장안정펀드와 같은 카드를 활용할 여지가 높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사상 첫 0%대로 내려앉게 되면서 시중에 풀려난 유동성이 가계부채와 주택가격 상승세를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한은은 이번 금리 인하에 따른 집값 상승세는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이 총재는 "주택가격은 금리 외 다른 요인도 많이 작용한다"며 "글로벌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커졌고 국내 실물경기도 타격을 받는 상황이라 단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세를 이어간다고 보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불균형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포인트 큰 폭의 금리 인하에도 원·달러 환율은 상승했고 주식시장과 국채선물시장에서의 외국인 매도 등 자금이탈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과도한 금리 인하에 따른 부작용과 보건 문제에 대응한 정책 효과의 제한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실제 임지원 금통위원은 소수의견을 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동수 애널리스트는 "한은의 0.5%포인트 금리 인하와 충분한 유동성 공급은 정도의 문제이지 통화완화 부작용에 대한 경계감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실효 하단에 다다른 기준금리와 추경 증액에 따른 물량 부담을 간과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