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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라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청년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는 더는 정년 연장 논의를 미룰 수 없다는 태도다. 현 정부에서 시행하진 않더라도 '계속고용제도' 같은 고용 연장 방안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4일 내놓은 KDI 정책포럼에서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요셉 KDI 지식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해당 보고서에서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8년 이래 감소세로 돌아섰고 앞으로 10년 이내 취업자 감소 현실화가 예상되는 만큼 인적자본 활용의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고령 가구의 소득·소비의 하락을 막는 한편 연금을 받는 나이가 65세로 점차 높아지는 중이어서 퇴직 이후 소득 공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은 필요하다는 견해다. 대법원은 지난해 초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높인 바 있다.
한 연구위원은 고령자고용법이 2013년 개정돼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60세 이상 정년이 의무화됨에 따라 고용보험 자료를 토대로 사업체 단위에서 정년 연장의 영향을 분석했다.
한 연구위원은 분석을 통해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난을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10~999인을 고용하는 민간기업에서 정년 연장 이후 나이별 고용증가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정년 연장 예상 수혜자가 1명 늘 때 고령층(55~60세) 고용이 0.59명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고령층 고용증가 효과는 규모가 큰 100인 이상 기업에서 100인 미만 기업보다 크게 나타났다"면서 "정년 연장이 없을 때 고령층 고용증가는 0.16명에 그쳤다. 3.5배 차이가 났다"고 부연했다.
반면 정년 연장으로 고령층 고용이 늘면서 청년층(15~29세) 고용은 0.2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100인 이상 기업에서 청년 고용 감소가 뚜렷했다. 10~99인 기업은 0.03명 증가했지만, 100인 이상 기업은 0.19명, 500~999인 기업은 0.26명 각각 줄었다.
청년 고용 감소는 정년 연장의 폭이 컸던 사업장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기존 정년이 55세 이하인 사업장에선 청년 고용이 0.39명으로, 10~999인 기업 평균보다 1.8배 더 감소했다. 기존 정년이 58세 이상인 사업장에선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 감소로 거의 이어지지 않았다.
공공기관은 사정이 달랐다. 공공기관은 청년 취업자 고용 의무가 있는 데다 2015부터 임금피크제(이하 임피제)가 확대 시행 중이어서 임피제로 아낀 재원으로 신규 채용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 연구위원은 "공공기관은 정년 연장으로 오히려 청년층 고용이 크게 늘었다"면서 "다만 임피제와 신규 채용이 병행되면서 중간 나이대 고용은 감소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중간 연령대에서 결원이 생겨도 충원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나이별 고용변화 분석을 보면 55~60세는 정년 연장으로 0.40명, 15~29세는 1.22명 각각 채용이 늘었다. 반면 35~39세와 40~4세는 각각 0.56명, 0.58명 고용이 감소했다.
한 연구위원은 "정년을 한 번에 큰 폭으로 늘리는 것은 민간기업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해 부작용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업은 부담을 줄이려고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등을 확대하고 특히 신규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년 연장이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더라도 충분히 긴 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선 정년 연장으로 고령층 고용이 증가하기보다 조기퇴직이나 권고사직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정년 연장의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운 고령층 노동자를 위해 시간 선택이 유연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번 보고서는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정년 연장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청년 일자리난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사업체 단위에서 데이터 분석이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지난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고용동향에 따르면 체감 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확장실업률)은 14.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포인트(P) 올랐다.
4월 기준으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5년 이래 최대다. 특히 청년층 고용보조지표3은 26.6%로, 1.4%P 상승했다.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상태라는 얘기다. 청년 고용 절벽이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로 최악으로 치닫는 상태다.
하지만 정부는 정년 연장을 서두르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노인 일자리 강화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고용연장에 대해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정부가 '계속고용제도'의 도입 여부를 현 정부 임기 안에 결정한다고 발표한 것과 맞물려 주목됐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기업에 60세 정년 이후 일정 나이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과하되,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 등 고용연장 방식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한 바 있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이 정년 연장과는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경영계는 난색을 보였다. 고령자고용법 시행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계속고용제가 사실상 정년 연장과 다를 바 없어 고용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현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임금체계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령층 고용 부담을 정부가 기업에 떠넘긴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계 지지를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앞선 정부에서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위해 도입했던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해고 규칙 완화 등을 적폐로 몰아 백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