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일반인 선물한도액 권고안 마련… 13일 협의회 예정대로 개최농·축·수산업계 일제히 반발… "규제로 인식·소비 위축 불 보듯 뻔해"文대통령 "남은 임기 민생 안정 최우선"… 업계 "생계 악영향 전시행정"권익위, 추석 선물가액 한시 상향도 반대… 업계 "소비 절벽 해결해야"
  • ▲ 청탁금지법.ⓒ연합뉴스
    ▲ 청탁금지법.ⓒ연합뉴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적용을 민간부문으로 확대하는 '청렴 선물권고안'을 추진하면서 농·축·수산업계 반발을 사는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는 일찌감치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확인돼 부처 간 엇박자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가속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위기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민생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아 권익위가 농·축·수산업계 어려움을 가중하는 정책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6일 정부와 생산자단체 등에 따르면 권익위는 김영란법의 선물가액 기준을 민간부문에도 확대 적용하는 청렴 선물권고안을 이달 중으로 마련해 추석을 앞두고 시행할 방침이다.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 3만원·선물 5만원(농·축·수산물 10만원)·경조사비 5만원(화환 10만원) 기준액을 민간에도 권고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공공분야뿐 아니라 민간에도 지나친 선물을 자제하는 분위기를 확산해 청렴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취지로, 권익위는 권고 성격의 윤리강령이어서 이를 어겨도 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태도다.

    그러나 농·축·수산업계 생산자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수산물생산자회원단체로 이뤄진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이하 한수총)는 지난 5일 건의문을 내고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농·축·수산물 소비 위축을 가중할 청렴 선물권고안은 철회돼야 한다"며 "청탁금지법은 도입 취지엔 공감하지만, 결과적으로 수산물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국내 수산업의 현실을 고려해 권익위가 전향적인 결정을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수총은 이어 "(권익위는) 법적 강제성이 없다고 하나 민간부문에도 선물가액에 제한이 있는 규제로 인식될 수 있고 이는 농·축·수산물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한우협회도 4일 성명을 내고 "추석 명절은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비대면 선물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상품 판매 준비에 여념이 없는 업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선물을 주고받으면서도 찜찜한 생각에 소비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와 불볕더위로 피해를 본 농·축산인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권고안이 시행되면 국민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농·축·수산물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

    권익위는 생산자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선물권고안 추진을 주저하는 눈치다. 권익위는 오는 13일 열려던 청렴사회민관협의회는 예정대로 연다는 방침이다. 다만 협의회에서 해당 안건을 상정해 다룰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권익위 관계자는 선물권고안 상정과 관련해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애초 권익위는 협의회에서 선물권고안을 논의한 뒤 국무회의에 보고할 계획이었다. 권익위 안팎에선 전망이 엇갈린다. 권고 성격의 윤리강령이어서 애초 계획대로 밀어붙일 거라는 의견과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시기에 긁어 부스럼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의견으로 갈린다.
  •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4회 국무회의에서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34회 국무회의에서 "방역·민생이 남은 임기 책무"라고 강조하고 있다.ⓒ연합뉴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두고 레임덕이 가속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코로나 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여전히 힘겨운 시기를 견디고 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방역과 민생에 전념하며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 우리 정부 남은 임기 동안 피할 수 없는 책무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부처는 코로나 격차 해소와 민생 안정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 추가 대책을 적극 발굴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익위가 추진하는 청렴 선물권고안이 민생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대통령은) 민생을 챙기라고 주문하는데 (정작) 부처(권익위)에선 되레 농·축·수산인의 생활과 생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전시행정을 펴고 있다"면서 "정책적인 확신이 있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을 하고 욕을 먹더라도 처벌 가능한 규제수단을 통해 정책을 추진하는 게 맞다. (권익위의 권고안은) 비겁한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부처 간 엇박자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농식품부와 해수부는 사전 협의를 통해 현 시국에서 선물권고안을 추진하는 것이 부작용이 크다며 반대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부처 간 실무협의회가 열렸다"며 "(해수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수산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청렴 선물권고안 시행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 견해도 해수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권익위는 사실상 이들 부처 의견을 무시한 채 청렴 선물권고안 시행을 밀어붙이려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권익위는 예정대로 오는 13일 청렴사회민관협의회를 열 방침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애초 협의회 개최 일정은 청렴 선물권고안 (논의)때문에 열려던 것"이라고 했다. 권익위는 협의회에서 다른 안건이 함께 다뤄지느냐에 대해선 "현재로선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권익위가 다른 부처 의견을 뒤로한 채 청렴 선물권고안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 ▲ 선물세트.ⓒ연합뉴스
    ▲ 선물세트.ⓒ연합뉴스
    한편 권익위는 농·축·수산 생산자단체가 요구하는 추석 명절 선물가액 상향 조정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총은 앞서 건의문에서 추석을 앞두고 명절 기간만 농·축·수산 선물가액을 20만원으로 상향 조정해줄 것을 함께 요구했다. 한수총은 "수산물 소비 절벽을 해결해 어촌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게 명절 기간에 한해서라도 정례적으로 농·수·축산 선물 상한액을 상향해달라"고 호소했다. 권익위는 지난해 추석과 올 설 명절기간에 한시적으로 농·수·축산 선물가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조정하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한 바 있다.

    정부 부처도 선물가액 한시 조정 필요성을 권익위에 전달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난달 실무협의회에서) 추석 명절 기간에 한해 선물가액을 상향할 필요성이 있다고 의견을 냈다"고 했다. 그러나 권익위는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권익위는 이번에 시행령을 또다시 개정하는 것은 어렵다는 견해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