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發 신용경색…10월 거래대금 약 13년 만에 최저치8~9% 금리 CP도 안 팔려…대형 증권사 ABCP 매입 한계증권업계 유동성 위기 심각…일부 중소형사 구조조정 수순
  •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인한 채권 시장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사실상 자산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월 한 달간 장내·외에서 거래된 채권 거래금액은 354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달과 비교했을 때 거래대금은 77조원 감소했으며, 올해 초와 비교했을 때는 무려 113조원(-24.2%) 줄어들었다. 

    앞서 지난 2019년 월간 600조원 수준이었던 국내 채권 시장 거래금액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700조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올해 들어서는 금리 상승과 함께 채권 가격이 내려가면서 거래금액은 400조원 중반에서 500조원대 초반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레고랜드발 채권 시장 침체로 거래 규모가 100조원가량 급격히 줄어든 셈이다. 

    월별 기준 채권 거래금액이 300조원대에 머문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9년 12월(372조원) 이후 약 13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올해 9월 강원도가 2050억원 규모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채권 시장의 유동성 경색이 급격히 나타난 영향이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사태로 시작된 단기자금시장 경색은 전체 채권시장 불안으로 확산했다”라며 “거래상대방에 대한 신뢰 훼손이 시작되면서 금융시장 유동성이 급속도로 냉각, 정부와 한국은행이 긴급 대응 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국내 중소형 증권사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놓였다. 이 중 일부는 금융채로 자금 마련이 어려워지자 자산 매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증권 지급보증이 많은 증권사는 이미 거센 유동성 압박을 받고 있다. 

    실제 부실이 누적된 중소형 증권사들은 기업어음(CP)이 연 8~9% 금리에 발행해도 팔리지 않자 상장지수펀드(ETF) 등 보유 재산을 팔아 현금 확보에 나서는 등 사실상 비상 경영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 ▲ ⓒ현대차증권
    ▲ ⓒ현대차증권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자금난을 겪는 증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후에도 단기자금시장은 아직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양도성예금증서(CD)와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시장 지표 금리는 여전히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31일 기준 A1급 CP 91일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4bp(1bp=0.01%포인트) 오른 연 4.63%를 기록했다. CP 금리는 지난 9월 21일 이후 쉬지 않고 매일 연중 최고치를 새로 쓰고 있다. 2009년 1월 이후 약 13년 9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기도 하다. 

    증권업계에선 중소형사의 유동성 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9개 대형 증권사가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할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어려워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가 증권업계 전체로 확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총 모집 자금이 5000~6000억원 규모에 불과할 것”이라며 “또 실제 자금이 투입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채권 시장 약세는 올해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내년 1분기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산이나 회생절차에 직면하는 수순이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나오고 있다. 

    안 연구원은 “정부와 한은의 조치는 최근 심화된 단기자금시장 경색을 일부 해소하는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라며 “확실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현재 채권시장이 위축된 가장 큰 요인인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 또한 “정부의 시장 안정조치 발표 이후에도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가 이어지는 등 단기자금 시장의 어려움은 지속되는 중”이라며 “연말까지 단기자금시장과 채권시장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