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예산안 처리 합의… R&D 6천억·새만금 3천억·지역화폐 3천억↑尹 드라이브 거는 원전 생태계 예산 등 어느 정도 복원될지 두고 봐야'이재명표 하명예산'은 대폭 증액돼 대조… 巨野 정치흥정에 밀린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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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가 20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합의했다. 법정처리 시한을 한참 넘긴 상태에서 지난해 세웠던 최장 지각처리 기록을 경신하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다만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과 내용을 보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예산 편성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는 이날 오후 만나 오는 21일 오전 10시 본회의를 열고 2024년도 예산안과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9월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난 총지출 규모 656조9000억 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야는 정부안 대비 4조2000억 원을 감액하기로 했다. 여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4조2000억 원을 감액하고 증액은 개별사업을 다 반영해서 가급적 4조2000억 원 가까이 증액할 텐데 증액이 안 되면 일부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세수 여건을 고려할 때 어떻게 보면 야당의 지출 예산 가위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정부 입장에서 반길(?) 만한 일일 수도 있다. 재정사업 지출을 다이어트한다고 했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막상 사업별로 지출 내역을 삭감하다 보면 과감하게 싹둑 잘라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걸 야당에서 대신 해준 셈인 거다.

    문제는 그런 감액 과정이 국민이 보기에 타당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번에 여야가 합의했다며 밝힌 내용을 보면 국민이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먼저 연구·개발(R&D) 예산은 6000억 원을 순증하기로 했다. 현장 연구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차세대 원천기술 보강, 최신·고성능 연구 장비 지원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정부는 2018년부터 매년 10%씩 증가한 R&D 예산에 중복, 비효율 등의 문제가 크다고 보고 올해(31조1000억 원)보다 16.6%(5조1626억 원) 삭감한 정부안을 국회에 냈었다. 구체적인 재정당국의 엑셀 시트 작업(예산부속명세서 정리)이 나와봐야겠지만, 늘려 잡은 R&D 예산에 원전 관련 예산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원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복원하려는 원전 생태계 관련 예산 총 1814억 원쯤을 전액 날린 상태다. 대신 문재인 정부에서 밀어붙였던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2302억 원), 신재생에너지 보급지원(1620억 원)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거 증액했다. 최종 담판에서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 예산 등 일부가 복원될 것으로 전망되나 원전 생태계 복원에 찬물을 끼얹는 수준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탄소배출 제로를 위해 전 세계가 원전 사업을 확대하고 한국의 경제사절단이 원전 수출에 적극 나서는 상황을 고려할 때 민주당의 원전 관련 예산 칼질은 국가 산업발전과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되묻고 싶다.
  • ▲ 내년도 예산안 합의한 여야.ⓒ연합뉴스
    ▲ 내년도 예산안 합의한 여야.ⓒ연합뉴스
    전액 삭감했다가 3000억 원을 반영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 지원 예산도 누구를 위한 예산 복원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애초 지역화폐 정책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사업의 효용성이 크지 않다며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재정을 조달해야 한다는 견해였다.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는 재정 지원 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사업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2020년 내놓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지역화폐의 소비 진작 효과는 크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특정 지역의 소비가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나라 전체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원래 쓰려고 한 현금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업종에만 소비가 몰리게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역 소비의 역외 유출 차단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가까운 다른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 경쟁을 유발할 뿐, 지역 내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결국 '보조금 효과'로 소상공인 매출이 다소 늘어나는 것 말고는 지역화폐 사업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오히려 지역화폐를 도입한 지역과 도입하지 않은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이 대표의 하명예산을 3000억 원이나 되살린 것은 양보나 타협이라기보다는 야합에 가까운 정치 뒷거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한 푼의 혈세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국회에선 국민 혈세를 쌈짓돈 다루듯 흥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여야 협상 과정에서 3500억 원을 새로 반영했는데, 올해 달라진 것은 민주당이 단독으로 7000억 원을 짠 뒤 최종적으로 3000억 원이 새롭게 반영됐다는 점 정도이다. 2년간 7000억 원 가까운 돈이 이 대표를 위해 만들어진 거나 진배없다.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 합의에서 크게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를 했다. 삭감됐던 '이재명표' 예산을 늘려 잡았고 선거를 의식한 예산 증액이라던 비판을 받았던 새만금 관련 예산도 3000억 원을 복원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뒤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예산, 매표용 예산은 최소화했다"며 "야당과의 협상에 정부안을 증액할 순 없다는 (재정건전성 유지에 대한)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임했고 증액 없이 예산안을 합의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랏빚을 더 얻는 것 만큼은 막았다며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당 입장에서 이번 예산안 합의를 마냥 긍정적으로 포장해도 괜찮은 걸까. 여소야대 한계에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를 위안하면 되는 걸까. 어떻게 보면 국민의힘은 분노해야 한다. 거대 야당이 단지 그 예산이 윤석열 정부의 사업예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위질하고 반대로 문재인 정부나 이재명 대표가 밀어붙이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혈세를 증액하는 모습에 화를 내야 한다. 이는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야당의 '대선 불복' 기조가 투영된 결과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에 묻고 싶다. 예산안을 심사할 때 진정 국민만을 바라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만을 생각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