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업 등골 빼 흑자 나자마자 '배당' 돈 잔치 빈축자구노력 없이 요금 인상, 개소세 정부 지원 등 '7조' 뚝딱기업 78%, 대책 없다 … 자가발전 등 '脫한전' 움직임 어쩌나
  • ▲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230531 사진=정상윤 기자. ⓒ뉴데일리
    ▲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230531 사진=정상윤 기자. ⓒ뉴데일리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한국전력공사가 모처럼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한국전력은 2024년 결산 결과 매출 94조13억원, 영업비용 85조6524억원, 영업이익 8조3489억원의 실적을 달성했다면서 4년 만에 '흑자' 성적표를 공개했다.

    발전 연료 가격 안정화와 요금조정, 재정 건전화 추진과 함께 일부 임금 반납, 희망퇴직 등 자구노력으로 경영정상화 토대를 마련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여기까지다.

    문제는 2021년부터 이어 온 누적영업손실은 여전히 34조7000억원에 달하고, 총부채는 1년 만에 2조7000억원이 늘었다.

    흑자 소식과 동시에 1367억원 배당도 결정했다. 공기업의 배당은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배당협의체에서 결정하며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인받으면 시행된다.

    부채 205조원, 연간 이자 부담 4조~5조원. 한전의 실상이다.

    사실상 '돌려막기' 경영 상황에서 배당은 납득이 어렵다.

    특히 이번 실적 개선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전의 주장처럼 '요금조정'이 아닌, 기업과 국민의 등골을 빼낸 '요금 인상'이 중심에 있다.

    흑자 요인은 2023년과 2024년 전기요금 인상과 지난해 판매량 증가 효과가 6조원, 발전 연료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 정부 지원으로 세금 1조원 등 기업과 국민 부담이 7조원에 달한다.

    또한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은 '고원가 발전기 운영조절'을 통해서도 1조원 이상의 수익을 냈다. 사실상 수도권, 울산, 여수 등 '수도권 대기환경보전법(석탄 등 고체연료 사용 금지)' 적용을 받지 않는 다른 지역에서 가격이 저렴한 고체연료(석탄)로 발전시설을 펑펑 돌렸다는 얘기다.

    성과급과 임금 인상분 반납 등 눈에 띄는 자구노력 효과는 꼴랑 206억원이다. 흑자 뒤에 기업과 국민의 고통 분담이 그대로 숨어 있는 셈이다.

    기업들은 전기요금 부담으로 일부 국내 투자에 대한 조정까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달 초 국내 제조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 따르면 78.7%가 '부담이 크다'고 답했고, 이 중 46.4%는 '경영활동이 위축될 정도'라고 아우성이다. 당연히 전기요금이 저렴한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할 의사가 있는 기업도 20% 수준에 달했다.

    전기요금 인상 추이를 보면 2000년 이후 2024년 12월까지 주택용 요금이 42% 오르는 동안 산업용 요금은 227% 폭등했다.

    과거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보다 낮았지만, 2000년 이후 총 24차례 인상에서 산업용 위주(19차례)로 올라 2023년에는 요금이 역전됐다. 또 2023년 4분기, 2024년 4분기 요금 인상에서도 산업용만 2차례 올려 역전현상은 더 커졌다.

    주요국가와 비교해도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확인된다.

    우리나라 산업용 요금(2024년 12월 기준, 190.4원/kWh)은 미국(121.5원), 중국(129.4원)보다도 높다. 원자력발전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2배 높아 발전단가가 낮은 프랑스(197.1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요금 인상으로 가격상승분을 제품 판매가격에 전가하기가 쉽지 않은 석유화학 및 철강기업 등 응답기업 79.7%는 영업이익이 줄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판매가격을 올릴 수 없고, 공정 특성상 24시간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석유화학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또 한 철강업체는 지난해 4분기 요금 인상으로 영업이익의 80%에 달하는 금액만큼 전기요금을 더 냈다고 토로했다.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지속으로 기업들 역시 생존을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자가발전은 물론, 전력도매시장에서 직접구매 등 한전이 공급하는 전기가 아닌 새로운 조달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업들의 '탈한전' 계획이 본격화될 경우 그동안 전력공급 사업을 독점해 왔던 한전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고, 그 영향은 국내 전력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흑자를 자화자찬하며 돈 잔치를 벌일 것이 아니다.

    한전 입장에서는 '요금의 정상화'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 가격 인상으로만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7조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면 현대판 가렴주구(苛斂誅求, 세금이나 요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배당까지 나선다니…, 매년 수조원의 이자를 부담하며 돌려막기 경영을 하고 있는 부채 공룡이 할 행동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이 에너지를 기반으로 반도체, 전자, 정유, 석유화학, 철강 등 제품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산업활동을 지원하는 전력시장의 든든한 뒷받침이 보장돼야 지속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공기업이 단순히 요금을 인상해 실적을 냈다고 자화자찬하며 돈 잔치를 벌일 것이 아니라 2001년 멈춘 전력시장 구조 개편 계획을 착실히 수행해 시설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부채를 줄여야 한다. 또 '탈한전'을 고민하는 기업 등 민간기업의 시장 참여를 적극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