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채 비율 GDP 대비 50% 훌쩍 넘어돈 찍어내는 기축통화국과 단순비교도 문제가파르게 급증하는 부채에 신용등급 하락 우려
  • ▲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인천 청라 유세에서 방탄유리 내부에 들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인천 청라 유세에서 방탄유리 내부에 들어가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라빚 1000조원을 넘었다는 등 절대 나라가 빚을 지면 안된다는 무식한 소리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국가부채 50% 안 되는 거면 양호한 수준 아닙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인천 남동구를 찾아 유세를 펼치며 발언한 내용 중 일부다. 이 후보는 유세 기간 이전부터 '확장적 재정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의 국고 지원을 통해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저출산·고령화 등에 따른 구조적 저성장을 돌파하겠다는 취지다.

    확정 재정을 위해선 적자 국채를 찍어 나라빚을 낼 수밖에 없는데도 이 후보는 다른 나라들보다 국가부채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본지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일지 팩트체크를 해봤다.

    ◆"다른 나라보다 국가 부채 적어서 괜찮다" … 기축통화국과 단순 비교 불가

    이재명 후보는 인천 유세에서 "코로나 때 경기·경제가 죽으니까 다른 나라는 국내총생산(GDP) 10~15% 심하게는 20% 가까이 빚을 지면서 국민들 지원해줬다"며 "우리나라는 국민들에게 공짜로 주면 안된다는 희한한 생각 때문에 돈을 빌려줬고, 영업자고 민간인이고 다 빚쟁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빚 1000조원을 넘었다는 등 절대 나라가 빚을 지면 안된다는 무식한 소리 하는 사람이 있다"며 "다른 나라 국가 부채는 110%를 넘는데 국가 부채 50% 안 되는 거면 양호한 수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국가부채는 이 후보의 발언과 달리 이미 GDP 대비 비율 50%를 훌쩍 넘었다. 기획재정부의 '2023회계연도 일반정부 및 공공부문 부채 집계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일반정부 부채(D2)는 1217조3000억원이며, GDP 대비 비율은 50.7%이다. 

    일반정부 부채는 중앙·지방정부의 회계·기금 부채(D1) 외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정부 채무로,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가 간 부채 비교에 이 지표를 주로 사용한다. 통상적으로 D1을 국가채무, D2를 국가부채로 칭하기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는 GDP 대비 우리나라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올해 54.5%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23년 대비 3.8%포인트 높고,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 11개국의 평균치 54.3%를 처음으로 넘어서는 수치다.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이미 50%를 넘어섰음에도 이 후보는 넘어서지 않았다고 호도한 셈이다. IMF는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이 꾸준히 늘어 2030년에는 59.2%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약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돼 확정재정을 펼칠 경우 부채비율은 이런 예상치를 크게 웃돌아 60% 이상 치솟을 수 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0%를 넘어선 건 한국같은 비기축통화국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D2 기준 기축통화국의 경우 97.8~114%, 비기축통화국의 경우 37.9~38.7%가 적정 국가채무 비율이란 추정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한국은 이 기준보다 10%P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의 "50% 안되는 거면 양호하다"는 발언 자체도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후보가 언급한 "다른 나라 국가 부채는 110%를 넘는데"라는 부분도 부족한 경제 상식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 중 상당수는 기축통화국이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국가 부채비율이 올해 122.5%로 늘어나고 2030년 128.2%를 기록할 전망이다. 

    부채비율이 우리나라와 비교해 훨씬 높지만 미국같은 기축통화국은 자금 조달 환경이 상대적으로 유리해 비기축통화국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비기축통화국은 외화 수요와 자본 유출 리스크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재정건전성 유지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기축통화국은 경제 대란이 벌어져도 자국 돈을 대량으로 찍어내 빚을 탕감할 수 있지만 비기축통화국은 그렇지 못하기에 부채 비율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며 "잘못된 비교로 국가가 빚을 더 져도 된다는 것은 경제 기초 상식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비기축통화국가가 나랏빚을 통제 못해 국가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맞으면 외환 위기를 또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놓는다. 

    ◆"급격한 부채 증가속도가 문제" … 건전재정 원칙 놓지 말아야

    더 큰 문제는 한국의 국가 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39.1%로 비기축통화국 평균(47.4%)보다 낮았지만 2020년 이후 코로나19 대응과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 확장, 복지성 지출 확대 등이 맞물리며 급격히 증가했다.

    실제로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부채는 400조원 이상 늘어 1000조원을 훌쩍 넘었다. 정부 수립 70여 년간 쌓인 빚의 3분의 2를 5년만에 늘려 놓은 것이다. 

    IMF는 우리나라 부채 비율이 2030년에는 60% 턱밑까지 다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향후 5년간 5%p 가깝게 추가 상승한다는 것인데 체코(6.1%p)에 이어 비기축통화국 중 두 번째로 높은 폭이다. 아울러 2030년 전망치는 같은 시점 비기축통화국 평균치(53.9%)보다 5%p 이상 높은 수치다.

    반면 비기축통화국 중 뉴질랜드(-0.5%p), 노르웨이(-2.7%p), 스웨덴(-2.8%p), 아이슬란드(-12.4%p) 등 국가들은 향후 5년간 부채 비율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또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0%까지 전망하는 상황에서 국가부채가 급격하게 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고려하는 대외신인도 점수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16일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며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1로 한 단계 낮췄는데 우리나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하방 압력이 큰 현 시점에서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은 필요하겠다"면서도 "장기적인 구조적 관점에서 재정 건전성을 심하게 흔드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