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신용등급, 2023년 AA-로 강등 이후 2년5개월 만에 A+로 또 하향피치 "정치 분열·양극화로 재정건전성 역량 약화 … 명확한 시야가 없는 상태"이재명 정부, '확장재정' 천명 … 2029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58%로 치솟아
  • ▲ 남부 마르세유의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마크롱 탄핵'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남부 마르세유의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마크롱 탄핵'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12일(현지시각) 프랑스의 재정 상황 악화와 정치 불안정을 이유로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또 하향 조정했다. 그나마 향후 신용등급 전망에 대해선 '안정적'이라고 했다.

    피치가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2023년 4월 'AA-'로 한 단계 강등한 뒤 2년 5개월 만이다. 피치는 지난해 10월 프랑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며 추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열어둔 바 있다.

    피치는 이날 낸 보고서에서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 배경에 대해 "정부가 신임 투표에서 패배한 것은 국내 정치의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했음을 보여준다"며 "이러한 불안정성은 상당한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는 정치 시스템의 역량을 약화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8일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이끄는 정부에 대한 신임 여부를 표결에 부쳐 신임 194표, 불신임 364표로 불신임을 결정했다.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는 지난 7월  440억 유로(약 66조 원)의 예산 절감과 정부 지출 동결, 공휴일 축소를 포함한 긴축 재정안을 발표했다. 지난달 25일엔 기자회견을 열고 나라 재정 상태가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지경에 빠졌는데 프랑스인들이 현실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충격 요법으로 '정부 신임 투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긴축 재정에 대한 야당과 여론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의회의 신임을 얻어 정책 추진 동력을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국가를 마비시키자'는 캠페인을 벌이며 반발했다. 국가 마비 시위는 애초 대형마트 불매 등 평화적 보이콧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극좌 성향의 정치 세력과 강성 노조가 가세해 물리적인 시위로 변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바이루 총리는 의회 불신임으로 9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프랑스 언론은 바이루 총리의 의회 신임투표 승부수가 '자살행위'라고 평가했었다. 의회 지형상 중도 세력인 범여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좌·우 양 진영이 정부 기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신임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바이루 총리가 의회 지지를 얻어 긴축재정을 강행하려 한 것은 그만큼 프랑스의 재정 위기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5.8%로 유로존 평균(약 3.1%)을 크게 웃돌았다. 국가부채는 3조3000억 유로(약 5200조 원)로,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 수준이다. 유럽연합(EU)에서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3번째로 높다. EU 규정상 허용치는 60% 수준이어서 프랑스는 재정적자를 통제하고 막대한 부채를 줄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에리크 롱바르 재무장관은 지난달 26일 정부가 재정상태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 "IMF(국제통화기금)가 개입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피치는 "향후 몇 년간 (프랑스의) 국가부채 안정화를 위한 명확한 시야가 없는 상태"라며 "국가부채가 2024년 GDP의 113.2%에서 2027년에는 121%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오는 202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단기적으로 재정 건전화 여지는 더 줄어들고, 정치적 교착이 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짚었다.

    불안정한 정국이 계속되면서 프랑스 국채금리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하순부터 크게 상승한 뒤 숨 고르기에 돌입했지만,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프랑스 국채 10년물 금리는 3.5% 선을 넘어섰다.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각종 차입 비용 상승과 재정 악화 심화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형성되기 쉽다.
  • ▲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1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을 찾은 시민들이 TV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뉴데일리DB
    ▲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1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을 찾은 시민들이 TV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뉴데일리DB
    문제는 프랑스의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을 지나며 나랏빚이 100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도그마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 계획 과정에서 재정 확대를 천명했다.

    이재명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총 728조 원 규모로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673조3000억 원)보다 54조7000억 원(8.1%) 증가했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4.0%로 전년보다 1.2%포인트(p) 늘고, GDP 대비 국가채무는 51.6%로 전년보다 3.5%p 증가한다.

    정부가 전임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에서 전면적인 '확장재정'으로 돌아서면서, 기획재정부는 오는 2029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8%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IMF도 우리나라 부채 비율이 2030년에 60% 턱밑까지 다다를 것으로 전망한다. 향후 5년간 5%p 가깝게 추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이는 체코(6.1%p)에 이어 비기축통화국 중 2번째로 높은 증가 폭이다. 아울러 2030년 전망치는 같은 시점 비기축통화국 평균치(53.9%)보다 5%p 이상 높은 수치다.

    경제전문가들은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0%까지 전망하는 상황에서 국가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고려하는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하방 압력이 큰 시점에서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은 필요하겠다"면서도 "장기적인 구조적 관점에서 재정 건전성을 심하게 흔드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