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가격만 30% 넘어 … 재료값만으로 폭리 단정 난색원가율 높은 식품·화장품 업계까지 반응 … “산업 현실 왜곡 말라”전문가 “가격 통제 인식 위험 … 시장 자율성 존중해야”
  •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서성진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서성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커피 원가 120원 발언이 유통업계와 자영업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업계는 “원가 개념을 오해한 발언”이라며 “단순 재료비만으로 폭리를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22일 다수 유통사 관계자는 이 후보의 원가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원가란,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투입된 직접적이며 구체적 현금 지출'을 뜻하는 표현으로 단순히 원두값을 원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커피 원가를 120원으로 단정 짓는 건 제품 가격 구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재료값 외에도 인건비, 임대료, 설비 유지비 등 다양한 비용이 포함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저가 프랜차이즈의 원가 비중을 보면 1500원 아메리카노의 경우 원두가격이 판매가의 33%인 500원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빨대나 컵, 홀더 등 비용이 135원, 커피머신 관리비 등을 모두 더한 비용은 판매가의 절반에 이르는 735원이었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커피 한 잔의 원가에는 원두 뿐 아니라 인건비, 운영비 등 고정비가 들어있는데 단순히 커피 원가 120원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단순히 재료가격만 가지고 기업이 폭리를 취한다는 식의 표현을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커피점업주연대 역시 지난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발언은 커피점 운영자들의 땀과 현실을 가볍게 여긴 처사"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정말 원가가 120원이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자영업자가 폐업 위기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 ▲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이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출하량이 급감해 글로벌 커피 원두 가격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이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출하량이 급감해 글로벌 커피 원두 가격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커피 프랜차이즈 뿐만 아니라 높은 원가율로 운영하는 식품업계 역시 난색을 표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A업체의 스낵 원가율은 밀 등 곡물원료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대두유, 팜유 등 유지 비용이 20%, 기타 재료비가 20%를 차지했다. 

    고환율과 국제 정세 변화 여파에 원부자재 가격이 출렁이며 국내 기업 수익성도 악화됐다. 

    올해 1분기 국내 주요 식품업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하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식품업계 1위인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 매출은 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0% 감소했고 농심의 경우 매출은 2.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8.7% 줄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제품 가격은 업체간 상황이나 시장흐름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단순히 원가가 얼마인데 제품은 왜 이 가격이냐라고 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관계자는 "원가라는 것을 외부에 공개하라는 것 자체도 문제고 제품 가격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해 확인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왜 툭하면 정치적 발언에 식품업계를 이용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화장품업계도 원가 논란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가격은 단순 원료비보다 성분 개발, 효능 연구, 패키징까지 복합 요소가 반영돼 결정된다"며 "원가만으로 제품 가격을 평가하는 건 산업 구조를 도외시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 ▲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이 재룟값과 원·달러 상승으로 1분기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은 코코아와 커피 원두, 돼지고기 등 재룟값 자체가 오른 데다 최근 몇 달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식품사의 수입 단가가 높아졌다. 사진은 16일 서울 한 대형마트 코코아 관련 과자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이 재룟값과 원·달러 상승으로 1분기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은 코코아와 커피 원두, 돼지고기 등 재룟값 자체가 오른 데다 최근 몇 달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식품사의 수입 단가가 높아졌다. 사진은 16일 서울 한 대형마트 코코아 관련 과자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원가라는 표현에는 임대료와 인건비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돼있는데 (이 후보의) 발언은 명확하지 못했다"며 "또 2019년 즈음 원두 가격이 120원이었던 것은 맞으나 현재는 원두값을 포함해 임대료, 인건비까지 모두 오른 상황으로 원가 자체도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저의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모든 재화의 가격 체제를 붕괴시키는 생각"이라고 (이 후보의) 발언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배추를 1000원에 사서 김치를 담가 팔았는데, 원가와 왜 다르냐고 하는 이야기와 똑같은 것"이라며 "이 후보의 경제관이 얼마나 심각한지 경제학 관계자들은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가대로 다 가격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이런 생각들이 지배적으로 퍼지게 되는 상황을 업계에서는 아주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동준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의로 해석하면 실언이고, 냉정하게 보면 무지를 드러낸 발언"이라며 "(이 후보의) 논리로 따지면 스타벅스 120원짜리 원두가 어떻게 1만원 커피가 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가격 책정은 임대료 등 외부 상황을 모두 고려한 역산으로 이뤄지며, 이것이 바로 스타벅스와 저가커피 가격이 다른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닭죽과 커피를 언급하며 정치를 위해 자극적으로 특정 업종을 비하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