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본질은 정부에 대한 불신 … "의료 100년 대계 설계해야"전공의가 PA 보조되는 현실 … 기초 수련부터 전면 재설계 필요"의료계 지금이라도 한목소리 내야" … 신뢰 회복 절실
  • ▲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서울시의사회
    ▲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서울시의사회
    "이제는 '의정 갈등'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까지 왔다. 의료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필요하다. 새 정부는 이 순간부터 '의료 100년 대계'를 설계해야 한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단호했고 동시에 절박했다. 최근 간담회에서 그는 새 정부 출범과 맞물린 의료계의 갈등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멀어진 젊은 의사들을 다시 붙잡기 위해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회장은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내부와 외부를 모두 경험하고 있는 그의 발언은 그만큼 무게감이 있다. 그가 진단한 현 상황의 본질은 신뢰의 부재로 좁혀진다.

    황 회장은 현재의 사태를 단순한 집단 행동의 여파로 보지 않는다. 그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일제히 의료·교육 현장을 떠난 이유를 "정부에 대한 불신"이라고 짚었다.

    그는 "‘복귀하지 않으면 유급’이라는 식의 압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학생들은 신뢰를 잃었다. 이제는 정부가 스스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시작"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정부가 일방적인 구조만 유지한다면,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의료 시스템 안에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우려다.

    황 회장은 "이재명 정부가 새롭게 설계해야 할 것은 단지 의대 정원만이 아니라, 의료시스템 전체의 리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 이달 내 '트리플링' 막아야 … 침묵은 직무유기

    황 회장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트리플링’ 사태다. 전국 40개 의대에서 8000명에 달하는 의대생이 유급 위기에 놓였고, 이 중 상당수는 제적 대상이다. 이대로라면 2024·2025·2026학번이 동시에 1학년 수업을 받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는 "트리플링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은 6월 말까지다. 7월에는 수업이 시작되기에 행정 처리가 끝난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역설했다.

    특히 의협의 침묵을 가장 큰 리스크로 꼽았다.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경직성과 지역의사회와의 단절된 소통 구조는 위기 상황에서 결정적 대응력을 잃게 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지난해 12월, 2월, 그리고 대선 직전까지 최소 세 번은 사태를 막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의협이 방향을 제시했다면 오늘의 혼란은 달라졌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대로 가면 의료계 분열… 기초 수련환경부터 재설계

    "수련 환경의 근본적인 개편 없이는 의료의 미래도 없다."

    황 회장은 "과거엔 오프도 없이 주 200시간씩 일했지만 정말 많은 임상경험을 쌓았다. 요즘은 행정업무나 단순 보조에 투입되는 일이 다반사다. 정작 필요한 의사 수련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료지원(PA) 간호사 과정이 생기면 전공의가 PA의 보조인력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전공의들이 많은 임상경험을 쌓을 수 있는 수련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정부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중소병원이나 2차 병원, 로컬 네트워크 병·의원과 연계한 ‘기초 임상 수련 네트워크’라도 만들어 교육시켜야 한다는 게 황 회장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황 회장은 의료계 내부가 하나의 방향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년 5개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사람들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의료계 내부마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끈끈했던 선후배 관계, 존경하던 교수님, 사랑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시의사회가 최선을 다하겠다"며 "의료계가 하나로 뭉쳐 한목소리로 정부와 대화하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국민들을 설득한다면 두려울 게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