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환율 변동성 확대…금융지주 CET1비율 악화 우려가계대출 하루 2100억 폭증…이달 증가폭 6조 달할듯가계빚 폭증+환율 급등 조짐…은행권, '대출 차단' 선례 재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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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중동 분쟁에 직접 개입하면서 국내 은행권이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내달 시행되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앞두고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데다, 중동발(發) 지정학적 위기로 환율 변동성까지 커지면서 은행권이 내외부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됐다.

    이로 인해 은행들이 자본 건전성 방어를 위해 대출 문을 사실상 걸어잠그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중동발(發) 지정학적 위기에 전 거래일보다 9.4원 오른 1375.0원에 출발했다. 이후 장 초반 급등하며 1380원에 육박했다. 미국의 이란 공격 직후 서울외환시장 개장일인 이날 환율이 치솟은 것이다.

    이 같은 환율 급등세에서 금융지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외화자산 평가가 자본비율에 미치게 될 악영향이다.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 가치가 커지면서 위험가중치가 증가해 금융사의 보통주자본(CET1)비율 하락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금융지주의 CET1비율은 0.01~0.03%포인트 하락한다. 주주 배당과 자본 환원 가능성 판단에 CET1은 핵심 지표로 작용한다. CET1은 금융사의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며, 대부분의 금융지주는 주주환원 기준으로 해당 비율을 제시한다.

    문제는 환율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가계대출까지 폭증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은행권의 대출 여력과 의사결정에 동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에도 가계대출 총량이 부담되던 시점에 환율이 1400원대 중반까지 치솟자, 은행권은 고위험군 대출을 제한하고 일부 대출 창구를 사실상 닫는 방식으로 자본비율 방어에 나선 바 있다.

    이달 19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52조749억원으로, 전월 대비 3조9937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일평균 대출 잔액 증가액이 지난해 8월(3105억원) 이후 10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하루 평균 약 2102억원씩 증가한 셈이다. 이 속도대로라면 이달 말까지 6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에서는 지표 기준으로 현재 상황이 영끌 광풍이 불었던 지난해 8~9월 수준에 근접하다고 분석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면 DSR 규제 차원에서 자체 총량 관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환율 급등으로 CET1이 하락하면 자본비율 방어를 위해 대출 자체를 줄이거나 고위험군 중심으로 옥죄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CET1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금융당국의 스트레스 테스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배당 제한, 내부 적립 확대, 여신 축소 등 직·간접적인 규제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가계대출 확대 자체를 리스크 요인으로 판단하고, 7월 DSR 3단계 시행을 계기로 대출 심사 기준을 더 까다롭게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가계는 물론 기업 전반의 신용 위축과 자금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오는 25일부터 7월 실행 대출모집인 주담대 추가 모집을 제한하기로 했고, NH농협은행은 이번 달부터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접수를 중단했다. 또 SC제일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주담대 만기를 기존 최장 50년에서 최장 30년으로 줄였으며, 영업점장 전결 우대금리도 0.25%포인트(p) 축소했다. 우대금리를 축소하면 대출금리가 오르는 등 수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새 정부에 따른 집값 상승 기대감에 영끌 열풍이 다시 시작되면서 지난해 8월과 비슷한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며 "여기에 중동 위기 고조에 따른 1400원대에 육박하는 환율 급등으로 은행권의 CET1이 하락할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