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얼어붙자 … 가계 여윳돈 93조 쌓이고, 정부는 40조 빌렸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가계가 운용한 여유자금이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초 상여금 등으로 소득은 늘었지만, 소비와 부동산 거래가 주춤하면서 가계 자금이 대거 금융자산으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로 자금 조달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92조9000억원으로, 통계 편제 이후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62조6000억원)보다 30조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순자금 운용액이란 한 경제주체가 일정 기간 동안 운용한 자금(예금·투자 등)에서 조달한 자금(대출·차입 등)을 뺀 금액이다. 쉽게 말해, 번 돈보다 쓴 돈이 적으면 순운용(+) 상태, 쓴 돈이 더 많으면 순조달(-) 상태가 된다.

김용현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연초 상여금 유입 등으로 가계 소득이 증가한 가운데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감소, 소비 둔화 등으로 여유 자금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가계의 총 자금 운용액은 101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0조원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금융기관 예치금이 49조7000억원 증가했고, 국내외 주식과 펀드 투자도 29조3000억원 늘었다. 실물 소비·투자보다는 금융상품 운용을 통해 자금을 운용한 셈이다.

가계의 자금 조달액은 8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소폭 감소했다. 증권사·카드사 등 기타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 규모가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로 인해 순자금 운용액이 더 크게 늘어난 구조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분기 말 기준 89.4%로, 전 분기(89.6%)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6분기 연속 하락세다. 다만 한은은 "올해 2분기는 서울 등 수도권 주택거래가 늘어 가계부채 증가 폭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소폭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같은 기간 순자금 조달 규모가 40조2000억원에 달했다. 전 분기(3조9000억원)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국채 발행이 40조7000억원 늘었고, 금융기관 차입도 증가했다.

기업 부문(비금융법인)의 순자금 조달 규모는 18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소폭 늘었다. 상여금 지급 등으로 운전자금 수요가 증가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에 따라 설비·투자 지출은 둔화된 흐름이 이어진 것으로 한은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