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사태 계기로 석유화학 업계 전반 부도위기 확산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 최대 생산국으로 한국에 부메랑국내 4대 석유화학 기업 상반기 합산 영업손실 4762억원정부, 지난해 12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방안' 발표8개월 지나도록 후속 대책 안나와 … "이제 정부가 나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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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화학업종의 만성적 불황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전남 여수 여천NCC 2사업장. ⓒ여천NCC
DL그룹(대림산업)과 한화그룹이 50대50으로 합작해 만든 국내 3위의 석유화학 회사인 여천NCC 부도설이 촉발한 충격파가 석유화학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부는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여천NCC는 2017년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20년 이상 석유화학 업계의 최우량 기업 중 하나였지만, 최대 수입국에서 최대 생산국으로 전환한 중국의 저가 석유화학 제품 공세로 최근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대주주인 DL그룹과 한화그룹이 자금 수혈 문제로 충돌을 빚으면서 급기야 '8월 부도설'까지 터져나왔다.이에 DL그룹이 11일 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일단 부도는 면한 것으로 보인다. 여천NCC는 부도설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3월에도 두 그룹에서 총 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자금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우려하고 있다.12일 정부와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 외에도 경쟁 업체들 역시 자금 압박으로 인해 현금 확보에 속속 나서는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2분기 말 연결 기준 LG화학의 부채비율은 110.7%다. 2022년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IPO) 이후 3년 만에 100%를 넘긴 것이다. 한화솔루션의 부채비율은 178%에 달하며, 롯데케미칼의 부채비율은 76.3% 수준이다.부채비율이 커지면서 경영 위기감이 고조된 기업들은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7일 에스테틱 사업을 2000억원에 양도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워터솔루션 사업도 1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롯데케미칼은 자산 경량화를 통한 사업구조 전환을 통해 약 1조7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이런 상황에서 정부 대책은 지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23일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사업재편에 나서는 석유화학 업계 등에 총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융자, 보증 등의 방식으로 공급하고 사업재편 추진 시 산업은행을 통해 1조원 규모의 사업 구조 전환지원자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정부는 당시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 원인이 중국·중동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과잉 때문이라고 보고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업계와 상의해 마련했다고 밝혔다.정부는 그러면서 "석유화학 업계가 스스로 자구 노력을 해오고 있고 사업재편 의지도 충분한 만큼 정부는 이를 촉진하도록 제도적 지원에 나설 계획"이라며 "업계가 사업재편 계획을 마련하면 관계부처와 신속히 지원하고, 실제 정책 수요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후속대책을 추진하겠다"고도 강조했다. -
- ▲ 산업통상자원부 전경. ⓒ전성무 기자
그런데 정부 발표 이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후속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대통령 탄핵 등에 따른 국정 공백 사태로 후속 대책이 흐지부지됐다. 새정부 출범 이후 구조조정 및 정부 지원책 마련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사이 여천NCC의 부도위기설이 불거졌다.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통해 석유화학 특별법 제정과 함께 여수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전남도 동부권을 친환경 스페셜티(특화) 화학 산업 거점으로 개편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는 등 석유화학 산업 위기 의식을 충분히 갖고 있는 만큼 정부의 특단 대책이 시급히 요구된다.석유화학은 국가 핵심 기간 산업이다. 작년 수출액만 약 480억달러(약 66조6000억원)로 반도체, 자동차, 일반 기계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국내 제조업 생산액도 2023년 111조원으로 전체 산업 중 5위였다.이런 핵심 국가 산업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4대 석유화학 기업(롯데케미칼·LG화학·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들의 올해 상반기 합산 영업손실은 476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영업손실 700억원)의 7배 가까운 수치다.붕괴될 경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미 지역 경제 침체는 현실화되고 있다. 여수·대산·울산 등 전국 3대 석유화학단지에 입주한 NCC(나프타분해시설) 설비 10곳 중 상당수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해당 지역의 세수도 급격하게 줄고 있다. 작년 석화 단지가 모인 여수·울산·서산 세무서에서 거둔 국세는 약 13조4000억원으로, 석유화학 호황기인 2021년(약 20조원)과 비교하면 33% 안팎 줄었다.한국화학산업협회 의뢰로 석유화학 사업 재편 컨설팅 용역을 진행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해 "이대로라면 현재 석화 기업의 50%는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 차원에서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확실성이 커져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도 "이대로 놔두면 지역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기업들 사이에서는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정부가 지금처럼 사실상 방관의 입장을 취할 경우 정책 오류로 공중 분해된 한진해운의 전철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짙게 배어나오고 있다.한 업계 관계자는 "민간 차원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기업들의 긴급 자금 수혈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며 "이제는 정부가 석유화학 업계 전반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