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1년 내 소각 의무화 골자될 듯자금줄 막혀 M&A·배당 등 악영향 불가피두달 새 연거푸 개정… 경제계 대응 속수무책포이즌필·차등의결권 등 최소한의 보호장치 시급
  • ▲ 종로구 광화문 광장 전경.ⓒ뉴데일리DB
    ▲ 종로구 광화문 광장 전경.ⓒ뉴데일리DB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달 정기국회에서 자사주(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을 추진한다. 노란봉투법과 2차 상법 개정에 이은 반(反)기업법 쓰나미가 경영 환경을 옥죄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잇따른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방어와 자금 조달의 유연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며 보호장치가 절실하다고 읍소하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다음 달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이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여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 3%룰 도입 등 내용이 담긴 1차 상법 개정안을 지난달 통과시킨데 이어 전날에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골자로 한 2차 상법 개정안을 강행한 바 있다.
     
    거대 여당이 독주하고 있는 만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3차 개정안 또한 강행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날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가 개최한 ‘자사주 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오기형 위원장은 “9월 정기국회에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법안을 다듬어 추진해야 한다”며 “상법 개정이 마무리된 만큼 자사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시점”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일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도 2026년까지 자사주 소각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 담겨있다.

    3차 상법 개정의 핵심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자사주 소각 의무화’다. 자사주 소각이란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을 없애 시장에 유통되는 전체 주식 수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기 주식을 임직원 복지의 의미가 있는 스톡옵션 등의 목적으로 보유한 것이 아니라면 모두 소각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기업 합병 등의 목적으로 우호 세력에게 싸게 팔아 의결권을 확보하고, 일반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치는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자사주 소각은 일반적으로 전체 주식 수가 줄고 주식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켜 소액 투자자들의 요구가 큰 상황이다.

    연이은 반기업법에 재계는 그야말로 공황상태다. 한 대기업 고위임원은 “두 달 사이 상법이 연속 개정되는 건 이례적”이라면서 “3차까지 이어지면 자금 운용과 지배구조 설계의 선택지가 한 번에 줄어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재계는 자사주 소각으로 경영권 방어와 자금 조달의 유연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이 단기적으로는 유통주식 수 감소를 통해 주당가치(EPS)에 긍정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자본비용을 높이고 인수·합병(M&A) 대가 지급 등 활용 수단이 위축돼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선, 소각은 회계상 납입자본을 줄여 자기자본 규모를 축소시키므로 같은 부채 수준에서도 부채비율이 오르고 자본완충력이 약화된다. 이는 경기 하강기나 대규모 투자 국면에서 신용등급 하방 압력으로 번질 수 있고, 곧바로 회사채·대출 금리에 전이돼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데 드는 평균 비용가중평균자본비용·WACC) 상승으로 이어진다. 특히 반도체나 배터리·정유·화학처럼 설비투자 규모가 크고 업황 변동이 심한 업종일수록 타격은 더 크다.

    한 대기업 재무담당자는 “투자 사이클과 조달 사이클을 맞추는 게 핵심인데, 취득 후 1년 내 소각이라는 제한이 걸리면 불리한 시점에도 소각을 강행해야 하는 역설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시장 안정 기능 약화도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기업은 시장이 크게 흔들릴 때 자사주를 되팔거나 대량 블록 거래로 수급 불균형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의무 소각이 도입되면 되팔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 주식이 오가던 통로가 좁아지고, 작은 뉴스에도 주가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인수합병·그룹 재편 비용도 올라간다. 자사주는 주식교환형 거래에서 현금 유출 없이 대가로 활용되던 재원인데, 소각 의무화 뒤에는 현금성 인수나 신주발행으로 대체돼 거래 성사율과 일정 모두에 불리하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정책도 더욱 악화할 수 밖에 없다. 현금이 들쭉날쭉한 기업은 자사주를 활용해 주주환원 강도를 조절해 왔지만, 의무 소각 아래에서는 이 같은 일은 불가능해진다. 자급을 급히 조달해야하는 상황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야 하는 만큼 주주 친화 정책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경영권 위협에 직접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자사주는 경영권 위협 상황에서 우호 지분으로 바꿀 수 있는 카드로 활용돼왔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다른 회사로 넘겨지면 의결권이 생겨난다. 이에 기업들은 보유하던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해 경영권 위협이라는 위급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무 소각시 적대적 지분 매입 시점에 투입할 즉각적인 방어 물량이 사라진다. 

    예컨대 SK그룹의 경우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당했던 당시 자사주를 활용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던 전례가 있다. 당시 소버린은 지분 14.99%를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했는데 SK는 자사주 4.5%를 채권은행 등 우호세력에 매각하는 등으로 방어에 성공했다. 만약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였다면 지금의 SK그룹과 SK하이닉스는 없었을 수도 있다. 

    재계는 최소한의 보완 장치로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더 많은 표를 부여해 창업자·핵심 경영진의 안정적 경영을 돕는 방식이고, 포이즌필은 적대적 M&A 시 기존 주주에게만 낮은 가격으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해 인수 시도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장치다.

    한 중견 제조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소각을 의무화하면 겉으로는 주주친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현금 보수주의가 강화돼 배당 확대 여력도 오히려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권 위협과 관련해서도 “자사주 처분은 이사회 결의로 신속하게 표 구조를 정비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인데, 의무 소각시 속도전에서 밀려 적대적 세력에 경영권을 빼앗기기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규제와 제도 변경이 연달아 나오면서 계획을 세워도 다음 달이면 전제가 바뀌는 상황이다. 자사주 의무소각까지 겹치면 조달비용은 오르고 방어·투자 모두 경직돼 현장의 체력이 버티기 어렵다”면서 “글로벌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데 정책 불확실성까지 커져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