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달러 대미 투자 방식 놓고 양국 입장차 '평행선'트럼프 "전액 선불" vs 이재명 "무제한 통화스와프 선결"외환보유고 급감 우려… 환율 1500원대까지 치솟을 가능성협상 장기화시 관세 인상·수출 타격 등 韓 경제 리스크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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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가 난관에 빠면서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한국의 외환보유액 중 85%에 달하는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방식에 대한 양국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넉 달 만에 다시 1410원을 돌파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500억달러 전액을 선불 현금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무제한 통화스와프(정해진 환율로 상호 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권리) 협정 체결을 최소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며 외환 불안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2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8.4원 오른 1409원에 출발해 장중 1411원대에서 거래됐다. 환율이 1410원을 넘은 것은 지난 5월 15일(1412.1원) 이후 넉 달 만이다.환율 급등의 배경에는 글로벌 달러 강세와 더불어 미국과의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미국 측의 3500억달러 전액 현금 투자 요구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 본격적인 외환시장 방어 시험대에 선 격이다.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미 투자 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당분간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합의되더라도 한국 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30일, 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투자 방식에 대한 이견이 협상의 핵심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요구대로 일부라도 선불 투자할 경우 달러 수요가 급증해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며 "강달러 압력이 지속되면서 환율 상승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달러 전액을 현금으로 선불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며, 한국의 외환보유액(4100억달러)의 85%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펀드로 조성하라고 압박하고 있다.만약 이 요구대로 투자할 경우, 지난해 말 기준 4156억달러인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656억달러로 줄어들며 명목 GDP 대비 비율이 3.5%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유사한 수준으로, 심각한 외환 불안 우려를 낳고 있다.한국투자증권은 3500억달러가 현금 형태로 2년간 집중 유출될 경우 환율이 1579원까지 오를 수 있으며, 4년에 걸쳐 분산 투자하더라도 1536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 ▲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397.5원)보다 5.5원 오른 1403.0원에 출발한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언급하며 무제한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안전장치 없이 미국의 모든 요구를 수용할 경우,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하지만 미국이 한국의 무제한 통화스와프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스위스, 영국,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기축통화국이나 외환시장이 24시간 개방된 국가와만 통화스와프를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다.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당시 각각 300억달러, 600억달러 규모의 한시적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도를 정한 한시적 방식의 스와프를 수용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한국 정부는 현재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외환시장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하고, 원화 가치가 급락해 국가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반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추가 관세 인상 등 경제 압박이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리스크를 피하기 어렵다.전문가들은 이번 환율 급등세가 한·미 관세 협상 교착의 결과라고 분석하며, 미국의 3500억달러 선불 투자 요구는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한다.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3500억달러 중 2000억달러만 원화로 조달해 환전하더라도 환율이 급등할 것"이라며 "협상이 장기화되면 미국은 세율 인상이나 품목별 관세 확대 카드를 꺼낼 수 있어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일부에서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구금 사태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우석진 교수는 "조지아 구금 사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미국은 비자 문제를 한국의 책임으로 보고 있어 투자 규모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실적인 대응책으로는 마스가 프로젝트,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시 대출·보증 지원, 외환보유고 일부 유동화 정도가 있을 뿐"이라며 "이마저도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 연방대법원의 관세 위헌 판결이나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패배를 기대하는 '버티기 전략'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결국 이번 관세 협상은 경제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 사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동현 교수는 "7월 협상 당시 세부 조항도 검토하지 않은 채 3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대응이었다"며 "미국이 한국에 중국과의 거리 두기를 압박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만큼,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