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노태우 금전 지원 '불법원인급여'로 판단1.4조 재산분할 파기 … 불법자금, 법적 기여에서 배제국회·법무부, 독립몰수제 도입 논의 … 시민사회도 환수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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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데일리DB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대법원이 300억 원대 금전 지원을 '불법원인급여'로 규정하며 재산분할 산정에서 배제하라는 판단을 내리자 재계와 법조계는 물론 시민사회까지 그 파장을 주목하고 있다.단순한 이혼 소송을 넘어 신군부 비자금의 사적 이전을 법원이 사실상 인정했다는 해석과 함께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제도적 보완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재산 분할 부분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SK에 대한) 300억 원 금전 지원은 재산분할에 있어 피고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이어 "돈의 출처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뇌물 일부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를 함구함으로써 국가 자금 추적,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 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해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지적했다.더불어 대법원은 "노 관장이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행위가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선 안 된다"고 부연했다.이에 따라 2심에서 인정된 재산분할금 1조 3808억 원은 파기됐으며 환송심에서는 이보다 대폭 줄어든 수천억 원대의 재산분할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판결은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 조항을 단순한 부당이득 사건이 아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소송에도 적용했다는 점에서 법리적 의의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최 회장 측인 이재근 변호사는 16일 대법원 선고 직후 이와 관련해 "SK그룹이 노태우 불법 비자금이나 지원으로 성장했다는 부분에 대해 대법원이 명확하게 부부 공동 재산 기여로 인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일각의 억측이나 오해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하지만 해당 자금이 불법이라는 민사 판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곧바로 국고 환수나 형사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문제의 300억 원이 최 회장 측에 어떤 형태로 이전됐는지 구체적인 자산의 실체나 현존 여부가 입증되지 않았고 관련 형사 공소시효도 이미 상당 부분 경과했기 때문이다. 또 이 자금이 SK그룹의 현재 지배구조나 자산으로 구체화되었는지도 불투명하다. -
- ▲ 지난 8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균택 의원이 개최한‘국가폭력범죄로 인한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박균택 의원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 사적 경로로 기업가에게 이전됐다는 사실을 사법부가 사실상 확인한 첫 판례라는 점에서 제도 개혁 논의에 불을 붙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회와 학계 정부 시민사회는 최근 범죄수익 환수의 법적 한계를 보완할 방안으로 이른바 '독립몰수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독립몰수제는 유죄 판결이 없어도 범죄수익으로 의심되는 자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 제도는 피고인이 사망했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에도 범죄수익이 남아 있다면 환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유죄 확정이 있어야 몰수할 수 있기 때문에 신군부 시절이나 전직 고위직 관련 비자금에 대해서는 환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지난 8월 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는 학계와 법무부 관계자들이 참여해 독립몰수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박재평 충북대 로스쿨 교수는 내란이나 국가폭력 범죄에서는 기소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기소 중심의 몰수제도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성환 법무부 검사는 해외에 은닉된 범죄수익은 유죄 판결을 기다리다 환수 실익이 사라질 수 있다며 독립몰수제를 업무계획에 포함했다고 밝혔다.여당 의원들은 범죄수익은닉처벌법 개정안을 통해 독립몰수제 도입을 추진 중이며 야당 일부도 이에 공감하고 있어 21대 국회 후반기 입법 가능성도 거론된다.시민사회단체는 더욱 적극적이다. 5·18기념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신군부 비자금의 전면 환수 없이는 진정한 역사청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는 대법원 판결에 언급된 300억 원이 아직 존재한다면 국고로 환수돼야 한다며 실태조사를 요구하고 있다.다만 입법 과정에서는 기본권 침해 논란 소지가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유죄 없이 자산을 몰수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법적 반론과 함께 어떤 기준과 증명방식으로 범죄수익을 판단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존한다.이번 판결은 결국 대한민국 사법부가 불법한 권력 자금의 사적 이전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천명한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이 판단을 토대로 어떤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환송심 결과와 국회의 입법 논의를 통해 가늠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