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생산 물량 선점 경쟁 확산CSP "선제적 AI 인프라 투자 필수"선계약 추세에 공급자 중심 시장 재편설비투자 부담 완화 … 삼성·SK 증설 속도
  • ▲ SK하이닉스 HBM4 제품 전시 이미지 ⓒ뉴데일리DB
    ▲ SK하이닉스 HBM4 제품 전시 이미지 ⓒ뉴데일리DB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CSP)들이 내년 뿐 아니라 2027년까지의 메모리 확보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D램 시장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요 가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업황 변동을 전제로 움직이던 기존 시장 구조가 장기 수요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D램 산업의 체질 변화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1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CSP들이 최근 D램 공급사들과 내년 공급 물량을 확정한데 이어 내후년인 2027년 물량까지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지난 10일 리포트를 통해 "현재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올해와 내년 뿐만 아니라 2027년 물량까지도 논의하고 있다"고 전하며 "이 같은 흐름은 메모리 업체들에게 중장기적 가시성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CSP들이 선계약 확대에 나서는 흐름은 우선 내년 공급 계획이 이미 상당 부분 채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은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학습용 GPU와 스토리지, 서버용 메모리를 선제적으로 확보해 왔는데, 최근에는 HBM과 DDR5를 포함한 서버 메모리 전반에서 '2년치 선계약'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조기 주문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변화로 D램 시장에는 '공급자 중심'으로 가격 결정력이 강화되는 구조도 나타나고 있다. 선계약이 늘어나면 현물 시장 비중이 줄어 가격 변동성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HBM과 DDR5처럼 AI 서버에 투입되는 고성능 메모리는 CSP들이 일찌감치 확보하지 못하면 서버 증설 일정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업체 간 가격 협상력이 자연스럽게 공급자 쪽으로 이동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기존처럼 업황이 꺾이면 가격이 급락하는 구조가 약화되고 있다"며 "내년 가격은 이미 일정 부분 바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커지고 D램 가격의 하방 리스크가 옅어지면서 메모리 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CSP들이 미리 물량을 잡아두면 가격이 갑자기 떨어지는 일이 줄어들고 메모리 기업들도 미래 실적을 예측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또 시장 상황이 잠시 흔들리더라도 고성능 제품 중심의 가격을 유지할 수 있어 수익성이 크게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갖추게 된다.

    수요 예측성이 높아지면 메모리 업체들이 설비투자 결정을 훨씬 더 빨리 내릴 수 있다는 점도 선순환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선행투자에 나서야 하는 메모리 업체들 입장에선 앞으로 얼마나 팔릴지 확신이 서야 공장을 늘릴 텐데, 2027년 물량까지 논의되는 상황이면 투자에 망설일 이유가 줄어든다.

    그래서 최근 SK하이닉스의 청주 M15X나 삼성전자의 평택, 미국 테일러 공장처럼 고성능 메모리 중심의 증설이 더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HBM과 DDR5 같은 고부가 제품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 업체들은 자연스럽게 수익성이 높은 제품 위주로 라인을 재편할 수 있어 과거처럼 '증설은 곧 수익성 악화'라는 공식을 벗어날 가능성도 커졌다.

    업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D램 산업의 이미지 자체를 바꿀 신호로도 해석한다. 예전에는 메모리가 경기 따라 널뛰는 대표적 '사이클 산업' 취급을 받았지만 AI 확산으로 클라우드·서버 기업들이 몇 년 치 메모리를 미리 확보하는 흐름이 자리잡으면서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AI 모델 크기는 계속 커지고 GPU나 NPU 성능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선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려는 CSP들의 니즈는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설득력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