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보다 안정 우선시전영현·노태문 투톱에 겸직 역할 대부분 유지하버드 석학 영입해 연구 전념사업부장 전원 유임 눈길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
    삼성전자가 2026년 사장단 인사를 통해 조직 안정을 우선시하면서도, 차세대 기술과 AI 시장을 겨냥한 전열 재정비에 나섰다. 앞서 그룹 2인자로 꼽혔던 정현호 부회장이 용퇴하고 사업지원실이 신설되는 등 이재용 회장의 새로운 리더십이 기대되는 조직개편을 진행한 상황에서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을 투톱으로 사업부문의 안정을 추구하는 인사가 단행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 전영현·노태문 투톱 체제 … 사업부장 전원 유임해 안정화

    삼성전자는 21일 '2026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사장 승진 1명과 위촉업부 변경 3명 등 총 4명의 인사 이동을 발표했다. 인사 발표에 앞서 재계 일각에서 제기됐던 인사 하마평이 무색할정도로 소폭의 사장단 인사로 안정을 추구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올 초 불가피하게 1인 대표이사 체제였던 상황을 다시 2인 체제로 복원하면서 리더십에 안정을 추구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올 초 DX부문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노태문 사장이 직무대행을 떼고 정식으로 DX부문장에 오르고 대표이사도 맡게 되면서 기존 대표이사인 전영현 부회장과 함께 2인 대표 체제의 막을 다시 열었다.

    전영현, 노태문 두 대표이사 겸 부문장이 기존에 맡고 있던 사업부장까지 겸하는 것도 삼성전자가 이번 사장단 인사에서 무엇보다 사업부 '안정화'에 중점을 뒀다는 방증이다. 전 부회장은 DS부문장을 맡으면서 동시에 메모리 사업부장을 겸하고 노 사장은 DX부문장인 동시에 MX사업부장 역할도 이어간다.

    더불어 대규모 교체가 예상됐던 사업부 주요 사장단을 대부분 유임해 조직의 연속성과 안정을 강화했다. 이는 올해 거둔 사업 성과를 내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 ▲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사업부문장 겸 메모리사업부장 ⓒ삼성
    ▲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사업부문장 겸 메모리사업부장 ⓒ삼성
    특히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내년에도 반도체(DS) 부문을 이끌며 메모리사업부장직을 다시 맡은 점이 주목된다. 이는 글로벌 메모리 슈퍼호황과 AI 특수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삼성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이다.

    전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 반도체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던 시점에 등판해 DS부문과 메모리사업부를 동시에 이끌며 구원투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에는 삼성전자가 가장 골머리를 앓던 HBM3E(5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시키며 기술 리더십을 재확인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업계 최초로 HBM3E 12단 개발을 발표한 지 1년 8개월 만의 성과다.

    AI 특수 중심에 있는 메모리 반도체가 유례없는 슈퍼호황기에 들어섰다는 점도 전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 전반을 지휘하는 수장 겸 메모리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의 수장까지 이어서 맡게 된 데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슈퍼호황에서의 전략이 삼성 반도체의 새 역사를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서 전 부회장 같은 반도체 전통의 강자가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여러 역할을 맡던 전 부회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삼성미래기술육성의 중심축인 SAIT(삼성첨단기술연구소) 원장직은 박홍근 하버드대 석좌교수에게 이양됐다. 덕분에 전 부회장은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인증과 양산 체계 구축 등 전략 기술 확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노태문 사장이 DX(디바이스경험) 부문 대표이사와 부문장을 겸직하게 된 배경도 이번 인사의 핵심 중 하나다. 노 사장은 올 초부터 DX부문장 직무대행을 맡아 MX(모바일)와 VD(영상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소비자 제품군의 전략을 총괄하면서 무난히 조직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MX사업부장으로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특히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와 프리미엄 제품군의 안정적 수요 확보를 통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삼성의 점유율을 방어하고 수익성 개선에도 기여했다. 내년에는 AI폰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갤럭시 브랜드의 AI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 ▲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X부문장 겸 MX사업부장 ⓒ삼성
    ▲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X부문장 겸 MX사업부장 ⓒ삼성
    ◇ 이재용式 뉴삼성, 본격 가동 … 리더십 변화 속 사업 성과내기 속도

    이번 사장단 인사가 기대보다 소폭에 그쳤고 변화보단 안정에 방점을 둔 이유를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무엇보다 이재용 회장의 새로운 리더십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번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단행된 조직개편과 고위 임원 인사에서 삼성전자는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방향성을 보다 분명히 드러냈다. 삼성은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사업지원TF를 이번에 '사업지원실'로 공식 격상시켰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조직의 위상과 역할을 명문화함으로써 그룹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컨트롤타워 부활'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경영 효율화를 위한 체계적 관리 시스템 구축 의지 또한 담겼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사업지원TF를 이끌었던 정현호 부회장의 용퇴와 그 후임으로 박학규 사장이 낙점된 인사도 있다. 정 부회장은 오랜 기간 삼성의 조직 개편과 위기관리,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대응 등을 조율해온 핵심 인물로, 사실상 그룹 내 2인자로 불렸다. 그의 퇴진은 삼성의 '포스트 정현호' 시대 개막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재용 회장이 주도하는 새로운 리더십 전환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후임으로 발탁된 박학규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CFO(최고재무책임자), 기획실장, 중국총괄 등을 거치며 전략기획과 재무, 글로벌 사업 운영에서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박 사장이 사업지원실을 맡게 되면서, 삼성은 과거처럼 특정 인물에 의존하기보다는 조직 기반의 경영지원 시스템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삼성의 경영 시스템을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재편하려는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포석으로 해석된다.

    삼성이 이 회장을 중심으로 리더십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 사업부는 안정화된 리더십을 기반으로 성과를 내는데 보다 더 초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이번 사장단 인사에 이은 부사장 이하 2026년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