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1년 내 소각·미이행시 과태료 올해 상법 1·2차 개정 이어 규제 누적기업 "주가·자금조달·M&A 걸림돌" 우려주요국 달리 강제 소각 의무화 추세 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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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여당이 자기주식(자사주) 강제 소각을 핵심으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경영권 방어와 자금 조달, 구조조정과 주가 관리 등 다양한 목적에 쓰여 온 자사주가 제도적으로 묶이게 되면서 과거 소버린 사태와 같은 외국계의 경영권 공격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는 우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 與, 3차 상법 개정안 발의 … "취득 자사주 1년 내 소각 의무화" 

    25일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를 이끄는 오기형 의원은 전날 자사주 소각을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원칙적으로 1년 안에 소각하도록 하고, 임직원 보상·우리사주제도·신기술 도입·재무구조 개선 등 일부 경영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회사가 사전 계획을 세워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면 보유·처분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했다. 이 경우에도 주주총회 승인을 해마다 다시 받아야 한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도 예외가 아니다. 법안은 시행 전에 취득한 물량에도 동일한 소각 의무를 부과하되, 6개월의 추가 유예기간만 부여하도록 했다. 위반 시에는 이사 개인에게 5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동시에 자사주를 자산이 아닌 자본으로 규정해 교환·상환·질권 설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합병·분할 시에는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사주를 처분할 때는 모든 주주에게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해 균등한 조건으로 처분해야 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여당과 정부는 “자사주를 특정 주주나 경영진의 사익 도구로 쓰는 편법을 막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자사주를 저가로 우호 세력에게 넘겨 의결권을 몰아주는 관행을 차단하고, 자사주를 투명하게 정리해 일반 주주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위반 시 제재 수단을 형사처벌인 ‘벌금’이 아닌 행정제재 성격의 ‘과태료’로 낮추고, 예외 승인 절차에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조항(3%룰)이 빠진 점은 재계가 그나마 완화됐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기본 구조가 유지되는 만큼 핵심 규제는 그대로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히 기업의 우려는 최근의 상법 개정 흐름과 맞물리며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불과 몇 달 사이 1·2차 상법 개정안을 연이어 처리했다. 1차 개정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했고, 2차 개정에서는 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강행됐다. 지배구조 규제가 연속적으로 강화된 상황에서 자사주 규제까지 더해질 경우 “경영 판단의 선택지가 급격히 좁아질 수 있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여러 제도 변화에 적응하느라 기업 부담이 이미 상당한데 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 겹치면 대응 여력이 줄어든다”며 “해외에서도 강제 소각 제도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왜 국내 기업만 규제를 강화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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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법 연쇄 개정 여파… 기업들 "현장 부담 커졌다"

    경영계의 불안은 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자기주식을 10% 이상 보유한 104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2.5%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반대했다. 주요 이유로는 ▲사업 재편 과정에서 자사주 활용 차단 ▲경영권 방어 수단 약화 ▲자사주 취득 유인 감소로 인한 주가 부양 능력 약화 ▲해외 입법례와 비교해 불리한 경영환경 등이 꼽혔다. 소각 의무화가 도입되면 자사주 취득을 계획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60%를 넘었다.

    자사주 취득은 주가 관리 수단으로서 기능해 왔다는 분석이 많다. 취득 사실이 시장에 기업 가치 대비 주가가 낮다는 평가로 이어지며 투자자 기대를 높여 왔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자사주 취득 후 1~5일간 주가수익률은 시장 평균 대비 1~3.8%포인트 높았고, 공시 후 6개월·1년 수익률도 각각 11.2~19.7%포인트, 16.4~47.9%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가 기간별로 고르게 상승한 것은 취득이 안정적 주가 관리 장치로 작동했다는 의미다.

    소각은 일시적으로 유통 주식 수를 줄여 단기 기대감을 만들 수 있지만, 장기간 주가를 지지하는 기능은 취득만큼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 흐름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요인이 반복적인 취득 행동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각 강제는 주가 관리 수단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반도체·철강·자동차·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와 기술 성장으로 재편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석유화학업종은 M&A를 통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사주까지 소각해야 하면 거래 설계 과정에서 제약이 커질 수 있다.

    재무 측면에서도 부정적 효과가 우려된다. 자사주 소각은 회계상 납입자본을 줄여 자기자본 규모를 축소시키고, 같은 부채 수준에서 부채비율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신용등급 하락 압력으로 이어지면 회사채·대출 금리가 상승하고, 평균자본조달비용(WACC) 부담이 커진다. 반도체·배터리·정유·화학처럼 설비투자가 많은 업종일수록 충격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경영권 방어 문제는 재계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영역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 세력에 넘겨지면 즉시 의결권을 갖는 지분으로 전환된다. 2003년 SK그룹이 소버린의 적대적 공격을 받을 때 자사주 약 4.5%를 우호세력에게 매각해 방어에 성공한 전례가 대표적이다. 재계는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됐다면 같은 대응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해외 흐름과 비교해도 역행하는 처사다. 미국·영국·일본은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지 않고 기업이 필요에 따라 보유·처분할 수 있도록 폭넓게 허용한다. 독일도 자본금 10%를 초과하는 부분에 한해 3년 내 처분 의무를 두고, 불이행 시에만 소각을 규정한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미·영·일 시가총액 상위 30위 기업 90개사 중 58개사(64.4%)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었고, 보유 비중 역시 국내 주요 기업보다 높았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당초 제도 개선의 취지를 생각하면 소각이 아니라 처분 공정화만으로도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전했다.

    한편, 여당은 1·2차 상법 개정과 마찬가지로 이번 3차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정기국회 말 필리버스터 가능성을 고려해도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입법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연이은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취득 축소, 현금 보수주의 강화, 주주환원 압축, 경영권 방어 리스크 확대가 한꺼번에 겹치게 될 상황”이라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정책 목표와 반대로 주력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