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지분 의무 낮춰 M&A, JV 투자 물꼬 터금산분리 규정 조정으로 금융리스 활용 기대"재벌 특혜 아닌 국가 경쟁력 위한 제도적 환경 조성"
  • ▲ 인공지능(AI) 반도체 이미지.ⓒ정보통신기획평가원
    ▲ 인공지능(AI) 반도체 이미지.ⓒ정보통신기획평가원
    정부가 이르면 이번주 중 첨단전략산업을 중심으로 규제 일부 완화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기존의 공장 중심 증설을 넘어 핵심 공급망을 국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생산설비 확대 뿐만 아니라 핵심 후공정과 소재·장비까지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이르면 이번 주 합동회의를 열어 '지주회사 및 금산분리 규제 변경'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규제 완화의 핵심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보유 의무를 절반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자회사(증손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할 때, 해당 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으나, 수십조원이 드는 AI와 반도체 산업에서는 합작투자(JV)나 인수합병(M&A)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혀왔다. 

    금산분리 규정에도 일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리스 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기존 공정거래법은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업이나 보험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했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큰 첨단산업에서는 금융리스를 통해 시설을 임차하는 방식이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들이 반도체 산업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AI 반도체 산업의 경쟁의 구조 때문이다. 기존에는 공장을 얼마나 빨리 짓고 생산라인을 늘리느냐가 경쟁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후공정 능력과 특수 소재·장비 확보가 성능과 공급 시기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각종 규제로 인해 합작투자나 M&A를 통해 후공정과 핵심 소재·장비 기업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 결과 공급망을 국내에서 형성하는 속도가 늦어졌고, 속도전인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제기돼왔다.

    규제가 완화되면 반도체 기업은 생산설비 확대와 공급망 확보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가의 패키징 장비나 첨단 테스트 장비를 보유한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우거나, 핵심 소재 기업을 공동 설립해 국내에서 공급망을 갖추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공장 중심의 전공정 투자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장기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의 본격적인 설립이 시작되면서 내년부터 상당량의 장비와 소재의 장기공급 계약이 필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적절한 지분투자와 공급망 안정성 확보는 경쟁 우위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금융 자회사 보유가 허용될 경우, 반도체 설비투자에서 초기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예를 들어 금융리스가 가능해지면 고가 장비를 직접 구매하지 않더라도 일정 기간 빌려 쓰면서 투자 속도와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공장과 장비에 동시에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특성이 있어, 자금 조달 방식이 다양해지는 것만으로도 투자 계획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규제 완화시 글로벌 빅테크 및 소버린 AI 프로젝트 등과의 협력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오픈AI와 구글 등은 중장기, 적어도 3년 이상의 메모리 확보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규모 AI 데이터 센터 건설을 위한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AI칩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장기적인 지분투자와 전략적 파트너십 등 과정에서 안정적이고 구속력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금산분리 완화 논의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AI 중심 경쟁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공급망을 국내에서 함께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과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추진 중인 규제 완화가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규제 완화는 단순히 대기업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첨단전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변화”라면서 “국가가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와 글로벌 시장에서의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