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편중대출서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 주문 … 바젤 범위 내 자본규제 완화 검토장애인 고용률 1.6%·포용금융 평가·상생금융지수 예고 … 사회적 책임 이행, 지표로 관리지배구조 개선 TF 띄워 CEO 승계·독립이사·IT보안 점검 … "지주 통합관리 역할 강화"
  • ▲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금융지주회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곽예지 기자
    ▲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금융지주회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곽예지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정면에서 손질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업계·학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지배구조 개선 TF’를 출범해 금융지주 CEO(최고경영자) 자격 기준과 승계 절차, 이사회 구성 원칙을 전면 재정비할 계획이다. 

    2026년 7월 23일부터 상법 개정에 따라 사외이사 명칭이 ‘독립이사’로 바뀌는 만큼, 이사 선임 구조 전반을 점검하고 금융소비자·IT보안 등 특정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이사회에 최소 1명 이상 포함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에 올린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승계 시스템과 실질적인 이사 견제 기능을 갖춘 지배구조를 주주·시장 신뢰의 전제조건으로 명확히 한 셈이다.

    이번 방향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8개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를 한자리에 모은 ‘금융지주 CEO 간담회’에서 제시한 메시지다. 

    10일 서울 은행연합회 중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KB·신한·하나·우리·NH농협·BNK·DGB·JB 등 8개 금융지주 회장과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이 참석했다. 

    이 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최근의 소비자 피해, 대형 금융사고, 지배구조 논란을 언급하며 “지주사는 그룹의 통할 관리 책임자로서 자회사 단계의 문제를 제때 감지·제어하지 못하면 그룹 전체의 신뢰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금감원이 제시한 금융지주 과제는 △생산적 금융 확대 △금융의 사회적 책임 강화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 보호 △지배구조 선진화 △IT보안 강화 등 다섯가지다. 금융지주 거버넌스와 영업 관행을 ‘신뢰 중심’으로 재편하는 대신, 바젤(Basel) 등 국제 기준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본규제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우선 금융의 자금 공급 방향을 부동산 편중 구조에서 생산적 부문으로 돌려 세우라는 주문이 나왔다. 이 원장은 부동산 담보 중심 여신 구조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기술혁신 기업과 미래 성장산업, 지역경제 활성화 등으로 자금이 폭넓게 흘러가도록 여신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생산적 금융 공급 목표를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집행으로 연결하고, 감독당국은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제 기준 범위 안에서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은 수치와 지표로 관리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 원장은 국내 은행의 장애인 고용률이 1.6% 수준에 그쳐 민간기업 법정 의무비율인 3.1%에 크게 못 미친다고 짚었다.

    금감원은 은행별 서민·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과 사회공헌 활동을 종합 평가하는 ‘포용금융 종합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상생협력 실적과 중소기업 만족도를 동반성장지수 내 금융 부문 지표로 계량화한 ‘상생금융지수’를 도입해 은행의 사회적 역할 이행 수준을 관리할 계획이다. 평가 결과는 경영진·이사회에 정기적으로 안내해, 상생·포용금융을 경영문화로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는 ‘생존 리스크’ 차원으로 격상됐다. 이 원장은 금융상품 구조가 복잡해지고 비대면 거래가 확대되면서 금융소비자가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상품 불완전판매를 일부 영업 현장의 일탈로 보는 인식과, 손실 발생 이후 배상으로만 대응하는 방식은 금융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그룹 차원의 생존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상품 설계 단계부터 내재 위험과 부적합 고객군을 촘촘히 점검하는 기준을 정교화하고, 설계·판매·사후관리까지 상품 생애주기 전 과정에서 그룹 차원의 일관된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라는 요구다.

    올해 도입된 ‘책무구조도’ 운영 실태 점검 결과도 공유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부 금융지주에서는 임원의 내부통제 활동이 여전히 형식적 점검에 그치고, 이를 뒷받침할 내규·전산 시스템 구축도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이사와 주요 임원의 역할·책임이 조직 구조와 프로세스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금감원은 향후 감독·검사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고, 금융지주에는 경영 관행과 조직 문화를 소비자 보호 중심으로 재정비할 것을 요청했다.

    지배구조 선진화는 별도 추진체계를 통해 본격화된다. 금감원은 지배구조 개선 TF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금융지주 CEO 자격 기준과 승계 절차를 마련하고, 이사회 집합적 정합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2026년 7월부터 사외이사 명칭이 ‘독립이사’로 변경되는 상법 개정 취지를 반영해, 이사 후보 추천 경로를 다변화하고 대주주·경영진과의 이해상충을 줄이는 구조도 검토 대상에 포함된다. IT보안·금융소비자 분야의 대표성을 갖춘 독립이사를 이사회에 최소 1명 이상 포함하는 방안 역시 논의하기로 했다. 

    IT·정보보안은 ‘생존을 위한 투자’로 규정됐다. 이 원장은 정보보안 사고가 금융의 핵심 가치인 신뢰를 훼손하고 대규모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보안을 IT 조직의 기술 이슈가 아닌 그룹 차원의 핵심 경영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주 차원에서 자회사들의 보안 투자와 사고 예방 역량을 강화하고, 금감원도 보안 취약점 분석·평가 등 사전예방 중심 보안 감독과 검사 시 IT 거버넌스·보안체계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금융권도 큰 틀에서 감독 방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이 자리에서 "금융지주가 우리 경제와 금융시스템의 핵심축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신뢰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며, 금융회사의 소비자보호·내부통제 강화와 감독정책 방향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지주 CEO들도 보이스피싱·개인정보보호·금융사고 예방 등 소비자보호 과제와 함께 미래 성장산업·지역경제 등 생산적 부문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