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퍼·패키징 소재·테스트까지 수직 계열화박 회장 주도 신성장 전략 … 자금 조달은 관건FI 유치 병행하며 '빅딜' 완주 가능성 높아져
  • ▲ 두산타워 전경ⓒ두산그룹
    ▲ 두산타워 전경ⓒ두산그룹
    두산그룹이 세계 3위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 인수에 나서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자사업 영역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웨이퍼를 시작으로 패키징 소재, 후공정 테스트, 자동화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축해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박정원 회장이 주도해 온 신성장 전략이 대형 인수·합병(M&A)을 계기로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는 17일 SK실트론 지분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두산을 선정했다고 공시했다. 매각 대상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로 구체적인 거래 조건은 향후 협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 소재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 기업으로 12인치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실트론의 전체 기업가치를 약 4조~5조원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매각 대상 지분을 기준으로 한 거래 규모는 2조~3조원 안팎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인수가 성사될 경우 두산은 반도체 밸류체인의 전·후방을 아우르는 구조를 갖추게 된다. 두산은 지주사인 ㈜두산 내 전자BG를 통해 반도체 패키징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하고 있으며, 2022년 인수한 두산테스나는 국내 1위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전문 기업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특화돼 있다. 여기에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이 더해지면 전공정 소재부터 패키징 소재, 후공정 테스트까지 이어지는 반도체 '소부장' 풀라인업이 완성된다.

    두산의 반도체 사업 확장은 과거 전자사업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다. 두산은 1970년대 후반 PCB 사업으로 전자산업에 진출해 한때 글로벌 시장 점유율 5위권까지 올랐고, 이 과정에서 축적한 화학·소재 기술력이 현재 전자BG의 기반이 되고 있다. 

    실제로 전자BG는 지난해 매출 1조63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 8788억원으로 두산 연결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9.1%까지 끌어올렸다. PCB 공정에서 확보한 기술은 반도체 소재는 물론 2차전지용 동박, 로봇 제어 기술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반도체 후공정과 자동화 영역에서도 두산의 축은 분명하다. 두산테스나는 최근 자산 총액의 21.76% 규모인 1714억원의 설비 투자를 결정했다. 2027년 완공 예정인 평택 신공장을 통해 첨단 시스템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응할 계획이다. 자동화 분야에서는 두산로보틱스가 협동로봇 분야 세계 5위권으로 성장하며 반도체 공정 자동화와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박정원 회장이 추진해 온 신성장 전략이 점차 구체적인 성과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산은 에너지·전력, 로봇, 반도체를 3대 핵심 축으로 삼아 전통적인 기계·에너지 중심 그룹에서 첨단 산업 중심 그룹으로의 체질 개선을 추진해 왔다. SK실트론 인수 추진은 이 가운데 반도체 부문의 무게감을 한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다.

    관건은 자금 조달이다. 두산은 올해 상반기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고 일반 신용대출을 더해 총 1조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별도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인수 자금 마련의 기초 체력은 갖춘 상태다.

    그러나 보유 현금의 상당 부분이 주식담보대출이라는 점에서 재무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재무적투자자(FI) 유치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SK실트론 인수를 돕기 위한 FI 모집에 착수했으며, 복수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공동 투자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은 상세 실사와 내부 검토를 거쳐 최종 인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두산과 SK는 현장 실사와 계약 조건 협의를 거쳐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목표로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협상 과정에 큰 변수가 없다면 내년 초까지 계약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을 연결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이며 기존 전자BG와 두산테스나, 로봇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며 "전공정 소재부터 후공정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갖추게 되는 만큼 반도체 산업 내 입지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