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원·달러 환율 5.2% 상승, 개도국보다도 약세 심화OECD 회원국 중 '꼴찌', 유로·파운드·위안까지 전방위 약세외국인 韓 주식·채권 대거 매도후 원화 던지고 이탈 순대외채권국에도 정부 외화부채 급증, 구조적 부담 확대
  • ▲ ⓒGPT
    ▲ ⓒGPT
    원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중동 전쟁 장기화로 달러 강세가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은 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약세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원화가 똥값이 됐다"는 평가까지 나오며 정책 대응을 둘러싼 논쟁도 격화되는 분위기다.

    3일 인베스팅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기준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은 5.2% 상승했다. 이는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달러(+57.25%), 리비아 디나르/달러(+17.81%), 이집트 파운드/달러(+12.41%), 탄자니아 실링/달러(+5.79%)에 이어 높은 수준이다.

    심지어 가나 세디/달러(+4.8%), 시리아 파운드/달러(+4.45%), 태국 바트/달러(+3.75%), 터키 리라/달러(+3.59%), 네팔 루피(+3.29%) 등 개발도상국보다도 약세 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는 달러뿐 아니라 주요 통화 대비로도 전반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 원·유로 환율은 지난해 10%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3% 가까이 오르며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730원대에 진입했다. 원·영국 파운드 환율 역시 2000원대를 위협하고 있으며, 원·위안 환율도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인 210원대를 기록 중이다. 원·엔 환율은 과거 위기 수준에는 미치지 않지만 올해 들어 2.6% 상승했다.

    특히 OECD 국가 가운데 달러 대비 원화보다 더 큰 폭으로 약세를 보인 통화는 단 한 곳도 없다. OECD 국가 중 꼴찌다.

    외환당국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36억 6000만달러로 전월보다 39억7000만달러 감소했다. 기타 통화 사잔의 달러 환산액이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외환시장 개입도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외환보유액 구성 항목 중 즉각적인 시장 대응에 활용되는 예치금이 한달새 14억 넘게 줄었다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환율 방어에 실패한 채 소중한 외환만 낭비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급격한 환율 상승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 약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 ▲ ⓒ인베스팅. 지난 2일 오후 기준 각국 환율 비교.
    ▲ ⓒ인베스팅. 지난 2일 오후 기준 각국 환율 비교.
    환율은 이미 1500원대를 돌파했다. 외환시장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긴장감도 감지된다. 원화 약세는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과 실질 구매력 감소, 대외부채 부담 확대, 자본 유출 등 부정적 파급 효과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다만 구조적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의 핵심 원인이었던 단기외채 비중과 금융 시스템 취약성은 당시 기업 평균 부채비율 589%와 맞물려 위기를 키웠다. 종금사의 단기 차입·장기 운용 구조와 통화 불일치까지 겹치며 외화 유동성 위기가 폭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KB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대 초 이후 순대외채권국으로 전환됐으며, 2025년말 기준 순대외채권은 3699억 달러에 달한다. 단기외채 비율도 2008년 약 47%에서 2025년 23.3%로 낮아지며 구조적 안정성이 강화됐다. 과거처럼 외환위기로 직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특히 정부 부문의 외화채무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부담으로 꼽힌다. 전체 외채에서 예금취급기관 비중은 1997년 56.3%에서 2025년 33.9%로 줄었지만, 대신 일반정부 장기채 비중이 확대됐다. 일반정부 외화채무는 연간 460억 달러 증가해 2091억 달러에 달했다.

    문제는 원화 약세와 맞물린 구조다. 정부 수입은 대부분 원화로 들어오는 반면, 달러 부채가 늘어나면 환율 상승만큼 실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정부 재정 확대 정책이 환율 불안과 맞물릴 경우 부담이 배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도 추가경정예산 추진이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신호도 존재한다. 3월 수출은 861.3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무역수지 흑자도 257.4억 달러로 월간 기준 최대를 나타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함께 석유제품 수출 단가 상승 영향으로 수출액은 전년동월대비 54.9% 급증하며 전체 흐름을 견인했다. 원유 수입액도 전년동월대비 5% 감소하며 흑자 확대에 기여했다.

    KB증권 리서치센터는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매도세가 나타나고 있지만, 채권시장에서는 WGBI 편입 기대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까지 재정 건전성 우려가 채권시장 신뢰를 훼손할 수준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원화 약세가 장기화되고 정부 외화채무 확대가 지속될 경우, 시장의 경계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외환보유고 확충과 함께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법인세 인하 등 기업 환경 개선을 통해 외화 유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75%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고, 외환보유고는 GDP 대비 약 22%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구조에서는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되지 않았고, 한일 통화스와프도 100억 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외환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외환보유고를 최소 1조 달러 수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는 약 4200억 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무역 의존도, 국가 부채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원·달러 환율은 상승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 직접투자보다 기업의 해외 유출이 약 2배 많고, 대학생 취업률도 44%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지 못할 경우 자본 유출이 지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근 법인세 인상과 노란봉투법 등 각종 규제 등으로 기업 부담이 커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