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긴장 고조로 중동 원유 공급 차질당장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 … 장기적 수익성 압박미국산 원유 운송비·유종 특성 차이로 정유사 부담공급 불안 속 압수수색 겹쳐 … 정유업계 이중 압박
  • ▲ 지난달 3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에서 요격된 이란 드론 잔해가 푸자이라 석유 시설에 떨어진 뒤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치솟고 있다.ⓒ뉴시스
    ▲ 지난달 3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에서 요격된 이란 드론 잔해가 푸자이라 석유 시설에 떨어진 뒤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치솟고 있다.ⓒ뉴시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속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업계가 비상 대응에 나섰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상존해 왔지만 실제 해협 봉쇄로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업계의 당혹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 급등에도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데다, 기름값 담합 의혹으로 검찰 압수수색까지 겹치면서 업계는 대외·내부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되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이 같은 압박 속에서도 중동발 공급 차질이 6월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SK에너지 등 정유 4사는 미국산 원유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산 도입을 포함해 다양한 에너지 대체 물량 확보를 위해 업계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 1일(현지시각) 대국민연설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과 관련해 "연료가 필요한 나라들은 미국에서 석유를 사라"고 압박했다.

    다만 정유업계에서는 기존 중동산 원유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 구조는 단순한 수입 관행이 아니라 국내 정유 산업 경쟁력과 맞닿아 있다. 중동산 원유는 황 함량이 높은 중질유로 정제 난이도가 크지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운송 기간(20~25일)도 짧아 경제성이 높다.

    반면 북해산 브렌트유나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품질이 좋지만 가격이 높다. 한국까지 운송기간도 약 50일로 길고, 운송비도 2배에 달한다.

    따라서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산 중질유 처리에 맞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설비를 고도화해 왔다. 탈황·분해 공정을 통해 중질유에서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고부가 석유제품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 같은 구조 덕분에 한국은 산유국이 아님에도 높은 정제마진과 함께 석유제품 수출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항공유의 경우, 한국이 세계 1위 수출국이다.

    현재 한국의 원유 수입량은 중동산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과거 오일쇼크와 걸프전 등을 겪으며 도입선 다변화를 추진해 왔다. 중동 의존도는 과거 90% 이상에서 최근 약 60% 수준까지 낮아졌다. 북미·중남미(25.3%), 아시아(8.0%), 아프리카(4.1%), 유럽(0.6%) 수준이다. 

    문제는 북미, 멕시코 등 비중동 국가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있지만, 중동산 원유 비중을 단기간에 크게 줄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 설비가 중동산 중질유 비중이 높은 조건에 맞춰 설계돼 있어 다른 성질의 원유가 늘어나면 공정 조건을 수시로 조정해야 하고, 설비 추가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유사들은 다양한 원유를 섞는 '블렌딩'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동산과 성질이 유사한 원유를 찾거나 여러 산지 원유를 혼합해 기존 설비에 적합한 비율을 분석해 도입하는 방식이다.

    중동산과 성상이 유사한 러시아산 원유 역시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제재 변수로 안정적 대체 공급망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2022년 4월까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며 수입을 중단했다. 최근 미국 정부가 해상에 있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이는 단기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미국산 외 대체 원유 확보에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도 소요된다. 아프리카에서 원유를 들여올 경우 운송 기간도 최대 50일까지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산유국이 아닌 국가가 원유 수입 구조를 바꾸는 데 수십 년이 걸린 만큼 단기간에 공급망을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는 장기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과제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유 산업이 중동산 원유에 맞춰진 구조라는 점이 핵심"이라며 "단순히 가격 때문이 아니라 설비 투자와 공정 최적화가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결과"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대외 변수뿐 아니라 내부 부담도 동시에 커진 상황이다. 최근 검찰이 정유사 4곳을 대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투입된 수사 인력만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과 원가 상승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검찰 수사까지 겹치며 경영 환경이 크게 위축됐다. 

    정유사들은 담합 의혹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에너지 안보에 기여해 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담합이나 폭리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업계의 의욕을 꺾는 일"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