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동남아 원유 수송에 최소 3주, 공급차질 불가피국가비상사태 선포, 4월부터 무더위로 전력 수요 폭발 '이중고'필리핀에 무라타·삼성전기 'MLCC' 공장, 전세계 점유율 과반 MLCC, 24시간 가동 필수, 전력 중단 시 전량 폐기 리스크온·습도 민감한 반도체 부품 70% 항공 운송, 항공유 쇼티지 '직격탄'
  • 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수급 불안정이 글로벌 반도체 및 IT 공급망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전기차(EV)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의 주요 생산 기지인 필리핀의 에너지 상황이 조명받으며, 관련 하드웨어 산업의 조달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비축유 없는데" … 중동→동남아 최소 3주

    시장 일각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따른 에너지 공급 정상화를 기대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원유 수급에는 물리적인 시차가 존재한다. 

    업계에 따르면 중동 산유국에서 원유를 화물에 선적하는 데 최대 7~10일이 소요되며, 동남아시아 항구까지의 순수 항해 기간만 12~14일이 걸린다고 전해진다.  

    즉, 지금 당장 해협 개방 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실제 원유가 도착하기까지는 최소 3주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리핀의 에너지 비축량 부족이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필리핀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98%에 달하지만 공공 비축유가 전무하며, 민간 비축분 역시 3~4주 치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4월은 동남아시아의 평균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는 시기로 냉방을 위한 전력 수요가 크게 증가한다. 

    이미 필리핀 케손(Quezon)주의 파트나눈간 섬은 연료 부족으로 인해 발전소 가동 시간을 하루 16시간(오후 4시~다음날 오전 8시)으로 강제 단축하는 등 제한 송전에 들어갔다.

    ◇ 무라타 필리핀 MLCC 공장 멈추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되는 부문은 반도체 주변의 전류를 안정시키는 핵심 부품인 MLCC 생산 라인이다. MLCC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고대역폭메모리(HBM), AI 서버, 테슬라 등 자동차 전장 장비에 수천에서 수만 개가 사용된다.

    현재 필리핀에는 글로벌 MLCC 시장 점유율의 약 40%를 차지하는 일본 무라타 제작소와 20~25%를 차지하는 삼성전기의 주요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기 생산 라인의 경우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가동률이 99%에 달하는 상황이다.

    MLCC 제조 공정은 장시간 고열의 가마에서 부품을 절대 끊기지 않게 굽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이 과정에서 전력 공급이 중단될 경우 가마 안의 부품을 전량 폐기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불안정한 화력 공급 등으로는 이를 대체하기 어려워, 현지의 전력 공급 불안정은 대규모 재고 손실 및 생산 중단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기의 필리핀 MLCC 공장의 경우 석탄, 재생에너지가 전력의 80~90%를 담당하고 있어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 반도체 70% 항공 운송 … 항공유 대란 '직격탄'

    생산 시설의 가동 문제뿐만 아니라 완성된 부품을 고객사로 인도하는 물류망에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온도와 습도 등 환경 변화에 민감한 반도체 관련 정밀 부품은 약 70%가 항공편을 통해 운송된다.

    그러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자료에 따르면, 2026년 2월 13일 기준 배럴당 93.88달러였던 세계 평균 항공유 가격은 한 달여 만인 3월 19일 기준 배럴당 216.00달러까지 급등했다. 

    항공유 가격 폭등 및 부족 사태로 인해 필리핀과 베트남 현지에서는 항공편 감축 논의가 진행되거나 노선이 취소되고 있어, 글로벌 고객사를 향한 제품 인도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증권가 관계자는 "만약 부품 조달 지연이 현실화되면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계획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이란 전쟁 여파는 2분기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