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여둔 걸로 버틴다 … 물량 줄고 체감 부담 확대나프타 46%↑ 여파 … 포장재 가격 급등, 골목상권 직격탄편의점·퀵커머스까지 확산 … 봉지 유료화·발주 제한 이어져
  • ▲ 서울 한 과일 매장에 비치된 안내문ⓒ뉴데일리DB
    ▲ 서울 한 과일 매장에 비치된 안내문ⓒ뉴데일리DB
    "봉지 제공 불가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의 한 과일 매장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안내문에는 전쟁 여파로 원재료 수입이 불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생산이 중단됐다는 내용이 함께 담겼다. 매장 측은 봉지 제공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장바구니 이용을 안내하고 있었다.

    같은 날 찾은 서울의 한 전통시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오전 내린 비로 공기가 서늘해진 탓인지 시장 안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좌판 위에 갓 쪄낸 떡에서 김이 올라오고 반찬통이 빼곡히 놓인 가게 앞에도 손님은 띄엄띄엄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로 상인들은 "지금은 쟁여둔 걸로 버티는데 물량이 계속 줄고 있다"면서 "들어오는 물량이 예전 같지 않다"고 입모았다.

    이곳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A씨는 손님에게 떡을 건네며 "요즘은 가격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재료가 없어 공장에서 못 찍어낸다고 하더라"면서 "요구르트 병도 못 만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따로따로 담아달라 하면 사실 부담이 된다"면서 "자주 오시는 손님은 웬만하면 한 번에 담아가 달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 ▲ 서울 영등포구 전통시장에 위치한 과일 매장 ⓒ김보라 기자
    ▲ 서울 영등포구 전통시장에 위치한 과일 매장 ⓒ김보라 기자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B씨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는 비닐 대신 얇은 종이에 반찬 용기를 감싸며 "봉지 값이 소매 기준으로 30% 넘게 올랐다"며 "지금은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돼 최대한 아껴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규정상 일정 규모(33㎡ 이상) 도소매업에서는 일회용 봉지 및 쇼핑백의 무상 제공이 제한된다. 다만 소규모 매장에서는 관행적으로 무료 제공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가격 급등으로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매장에서는 봉지 별도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포장재 가격 인상 흐름이 골목상권까지 번진 것으로 풀이된다. 나프타 가격 상승(46.1%)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다. 비닐봉지는 폴리에틸렌(PE) 소재로 만들어지며 이는 나프타를 열분해해 생산하는 에틸렌을 원료로 한다.

    일부 매장에서는 종이봉투나 유산지로 대체 포장에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베이커리업계는 종이봉투로 대체가 가능해 다른 업종보다 영향이 제한적인 편이다. 정부가 최근 제과업계를 대상으로 종이봉투 무상 제공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점도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 ▲ 중동 지역의 갈등으로 인해 나프타를 비롯한 포장재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유통업계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연합
    ▲ 중동 지역의 갈등으로 인해 나프타를 비롯한 포장재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유통업계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연합
    다만 현장에서는 이미 상당수 매장이 유상 판매를 하고 있어 체감도는 높지 않다는 반응이다.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C씨는 "버터, 초콜릿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봉지까지 오르니 부담이 크다"면서 "마진이 크지 않은데 이런 비용이 계속 쌓이면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포장도 최대한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쟁 장기화로 봉지 수급을 넘어 포장재 공급 불안이 식품·유통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다. 한국식품산업협회 등 13개 단체는 공동 건의서를 통해 나프타 공급 불안으로 비닐·필름·PET 용기 등 주요 포장재 확보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으며 일부 품목은 재고가 약 2주 수준까지 감소했다고 밝혔다.

    유통업계도 대응에 나섰다. 세븐일레븐은 점포 운영용 봉지 가격을 최대 39% 인상했고 GS25와 CU는 발주 물량을 줄이거나 제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재고로 버티는 단계지만 수급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영향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며 "포장재 문제가 단순 비용을 넘어 공급망 전반의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