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발 투자 한계론 속 BNK도 "하반기 둔화" 제기고금리·고유가에 美 AI 투자 속도 조절 가능성 부상중국 추격·원가·노조 변수 겹치며 산업 전반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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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인공지능) 반도체 호황을 타고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던 한국 반도체 산업에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서버용 D램 수요는 여전히 강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이익의 크기에서 지속성으로 이동했다. AI 투자 속도 조절 가능성, 메모리 가격 상승세 둔화, 중국 추격, 지정학 리스크까지 맞물리며 슈퍼사이클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적은 최고, 모멘텀은 둔화” … 피크론의 본질

    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BNK투자증권은 최근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낮추고, 하반기 모멘텀 둔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52조5760억원, 영업이익 37조6100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급 실적이지만, 일각에서 영업이익 40조원 이상을 기대했던 시장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실적 부진이라기보다 기대치가 더 빠르게 올라간 결과다.

    문제는 다음 국면이다. BNK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이 60조원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지만 하반기에는 상승 탄력이 둔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추론 AI 사이클이 후반부에 접어들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HBM4 매출 비중 확대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다.

    가격 지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PC용 D램 범용 제품 가격은 11개월 연속 상승한 뒤 3월 13달러에서 보합을 기록했다. 업황 하락 신호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급등세가 멈추고 가격 상승 탄력이 둔화되는 초기 흐름으로 해석된다.

    현재 반도체 호황의 상당 부분은 수요 확대와 함께 평균판매가격(ASP) 상승이 이끈 측면이 크다. 가격이 이익을 끌어올리는 구조에서는 ASP 상승세가 둔화될 경우 실적 증가 속도도 함께 느려질 수밖에 없다.

    ◇AI 수요는 견조 … 변수는 ‘속도·비용·중국’

    AI 수요 자체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생성형 AI가 추론·에이전틱 AI로 진화하면서 HBM뿐 아니라 서버용 D램, 기업용 SSD 등 전체 메모리 사용량은 늘어나는 구조다. 다만 문제는 수요가 실제 매출로 연결되는 속도다. 데이터센터, 전력, 냉각 인프라 구축이 병목으로 작용하면 주문과 실적 사이의 시간차가 커질 수 있다.

    AI 투자 한계론도 같은 맥락이다. 고금리·고유가 환경이 장기화될 경우 빅테크의 설비투자 속도는 조절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구글의 메모리 효율화 기술처럼 동일 성능을 더 적은 메모리로 구현하려는 흐름은 중장기 수요 전망에 변수로 작용한다.

    대외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헬륨 등 공정용 가스와 물류비 부담이 확대되고,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제조 원가를 직접 압박한다. 공급 차질이 현실화하지 않더라도 운임과 원가 상승만으로 수익성은 흔들릴 수 있다.

    내부 변수도 겹쳤다. 삼성전자는 노조 파업 리스크를 안고 있고, SK하이닉스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 과정에서 주주가치 희석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메모리 호황으로 현금 창출력은 커졌지만, 투자·주주환원·노사관계 모두에서 정교한 조율이 필요한 국면이다.

    가장 구조적인 위협은 중국 추격이다. 업계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일부 영역에서 5년 안팎까지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범용 메모리부터 가격 경쟁이 본격화될 경우 시장 판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K반도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HBM 호황에 기대는 단기 전략을 넘어 메모리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AI 맞춤형 반도체까지 경쟁력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크론은 호황의 종료 선언이라기보다 다음 사이클에서 살아남을 기업을 가르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