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간의조건>서 아웃도어 '디스커버리 패딩' 노골적 홍보어린이도 즐겨보는 예능 프로에 '대놓고' 간접광고 웬말?



  • 기획사 대표 : 분위기 좋으니까 이거 PPL 한번 가자.

    조연출 : 아니 사극에서 자동차 용품 간접광고를 합니까?

    기획사 대표 : 나, 박 대표야.

    연기자 A : 네 놈이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연기자 B : 도대체 누가 지켜봤단 말이냐?


    연기자 A : [불액박스]가 봤다!

    (관객 웃음)


    연기자 A : 아니 불(不) 불행 액(厄) 무쇠 박(镤) 빼어날 수(秀)
                   불행을 막아주는 빼어난 쇳덩어리!


    기획사 대표 : 좋았어! 알아듣게 잘 끼워 맞췄어



    이상은 KBS 2TV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시청률의 제왕>의 한 장면이다.

    평소 드라마 [시청률]과 [PPL]에 사활을 거는 박 대표.
    그는 급기야 사극에까지 [간접광고]를 붙이려 한다.

    조연출의 만류에도 불구,
    블랙박스 PPL을 시대극에 삽입하는 박 대표.

    결국 연기자들은 박 대표의 지시로
    "500만 화소에 고화질 HD 영상을 지원하는 최신식 기계"라며
    사극 연기 도중 [불액박수]를 극찬하는 촌극을 빚는다.

    <시청률의 제왕>은
    [광고주의 입김]와 [시청률]에 휘둘리는
    드라마의 현실을 풍자한 패러디 코미디물.
    개그 프로그램 특성상 다소 과장되고 부풀려진 감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청률]이
    광고 수익을 결정하는 평가 잣대로 활용되면서
    선정적인 대사와 장면들이 늘고 있는 점도 문제지만,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 도를 넘어선 [간접광고]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다.

    특히 PPL(Product Placement·간접광고)의 경우,
    도입 취지와는 달리 점차 [노골적인 광고]로 진화하고 있어
    "시청권 훼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인기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한 시청자는
    "내가 보는 게 드라마인지, 홈쇼핑인지 헷갈린다"는
    푸념을 늘어 놓을 정도다.




  • ■ 조선시대 저잣거리에 <목우촌> 등장 ‘황당’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상속자들>에선
    카메라가 [캠핑]에 나선 주인공의 몸을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훑어 올라가며,
    스타일리시한 아웃도어룩을 노출시켰다.
    은상(박신혜 분)과 영도(김우빈 분)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에선
    난데없이 <두유>가 등장해
    장시간 [카메라 마사지]를 받는 특혜를 누리기도.
    공교롭게도 주인공 박신혜는 이 두유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 중이다.

    KBS 2TV <최고다 이순신>에선
    아예 주연급 배우가 아웃도어 업체 마케팅 실장으로 나와,
    온몸(?)으로 특정 브랜드명을 노출시킨다.
    심지어 브랜드명이 노출된 매장으로 가족들을 데려와
    신제품을 고르고 구매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SBS 일일드라마 <못난이주의보> 역시
    아웃도어 업체 디자인 실장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운 케이스.
    방송 내내 아웃도어 로고와 제품이 등장하는 것은 기본,
    신제품 개발을 이유로 발표회를 열어
    특정 제품의 기능과 디자인을 홍보하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조선시대 저잣거리에 <목우촌>이란 이름의
    고기집 간판을 내걸어 논란을 부추겼다.
    지난해 방영됐던 MBC 수목드라마 <더킹투하츠>는
    주인공들이 툭하면 [특정 브랜드]의 도너츠를 먹어
    <던킨도너츠>라는 애칭(?)까지 생겼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큰 인기몰이를 했던
    MBC 수목극 <아랑사또전>에선
    유독 <보쌈>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극 중 "이렇게 싸먹으니 맛이 끝내준다.
    고기가 야들야들한 것이 누린내도 없고.."라는 대사가 등장,
    시청자들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 ‘100분의 5’ 방송 제한 분량..사실상 유명무실


    2010년 1월 방송법 개정으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내 PPL이 허용됐으나
    표현 수위에 대한 세부적인 규제기준이 없어
    드라마를 [광고 수준]으로 전락시켰다는 맹비난이 일고 있다.

    개정된 방송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특정 회사 제품의 로고나 상표는
    전체 방송분량의 [100분의 5]를 넘길 수 없다.
    또 전체 화면의 4분의 1도 넘어선 안된다.
    하지만 이같은 시행령이
    시청자들의 [시청권 훼손]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굳이 <로고>를 클로즈업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이나 색상만 봐도
    어떤 회사의 제품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현행법상 <로고>만 가린다면,
    방송 시작부터 끝까지 특정 제품이
    고정 출현(?)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결국 [100분의 5]라는 방송 제한 분량이
    광고주나 제작사에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 11월 30일 방송된 KBS 2TV <인간의 조건>에선
    김준호, 박성호, 김준현, 정태호, 허경환, 양상국 등
    <개그콘서트> 주역들이 출연,
    [스트레스 없이 살기]란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들이 전파를 탔다.

    그런데 오프닝부터 [단체 패딩 패션]을 선보인 이들은
    개별 이동을 할 때에도 다양한 컬러의 아웃도어 제품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특정 회사의 신상품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인간의 조건>의 총 방영 시간은 70분.
    현행 방송법에 의하면
    협찬 회사의 로고가 나오는 분량은 전체 방송분량의 [100분의 5],
    즉 3.5분을 넘겨선 안된다.
    <인간의 조건>은 로고를 오픈한 상태로
    2분 30초 가량 [오프닝]을 진행했다.
    이는 [브랜드 로고 노출 허용 시간]에 육박하는 수준.
    이후에도 <인간의 조건> 멤버들은 화사한 느낌의 패딩을 입고
    도처를 돌아다니며 특정 브랜드의 노출을 극대화 했다.
    비록 로고 노출은 피했지만
    패딩의 색상과 디자인 등이 장시간 노출된 터라,
    제품 홍보 효과는 엄청났다는 후문이다.




  • “예능 프로그램 안 보는 어린이도 있나?”


    방송을 지켜 본 한 시청자는
    "숲이 우거진 공원을 배경으로 출연진이 한참 얘기를 나눌 때부터
    [특정 브랜드]가 노골적으로 부각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고정된 앵글에 각기 다른 의상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아웃도어 패션쇼]를 보는 듯 했다"고 밝혔다.

    오프닝 때부터 입고 있던 <패딩>을 갈아 입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협찬 의상이구나]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명인들이 TV에 나와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걸 뭐라할 순 없겠지만,
    온가족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봐야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좀 짜증이 났어요.
    안보면 그만이라고들 하시겠지만,
    고작 광고 하나 때문에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안본다는 건 억울한 일 아닌가요?


    최근 한국방송협회가
    지상파 방송3사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크리에이티브 등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마련한 <간접 광고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어린이를 주 시청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나
    보도, 시사, 논평, 토론 등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간접광고를 할 수 없게끔 돼 있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에도 [맹점]은 있다.

    어린이 시청자를 보호하기 위해
    [12세 관람가] 프로그램에선 간접광고를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과연 이같은 규제 항목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

    요즘 현실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어린이는 거의 없다.
    인기개그맨이 출연하는 <인간의 조건>은
    분명 어린이 시청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이 [12세 이상 관람가]라고 해서
    마음껏 [간접광고]를 실어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은
    현실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  




  • 마케팅 비용, 결국 소비자 ‘호주머니’에서 나와

    이날 방송에 찬조 출현(?)한 아웃도어 브랜드는
    [에프앤에프(F&F·대표 김창수)]의 <디스커버리>.
    <디스커버리>는 F&F의 기존 브랜드인 [더 도어(THE DOOR)]를
    <디스커버리 채널>과의 라이선스를 통해 전환한 신규 브랜드.

    F&F는 신생 브랜드인 <디스커버리>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올 한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상당수가 [방송 PPL]과
    [톱스타 모델료]로 지급됐다는 후문.

    실제로 F&F는 톱스타 공유와 전속 모델 계약을 맺고,
    CF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브랜드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F&F는 공유에게
    (경쟁업체 모델로 활동 중인)원빈-조인성 등과 비슷한,
    업계 최고 수준(10억원대 안팎)의 모델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F&F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방송 PPL]에서도 두드러진다.

    KBS 2TV <미래의 선택>과 협찬 계약을 맺은 F&F은
    여주인공 윤은혜를 적극 홍보에 활용하는 모습이다.

    F&F는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윤은혜의 [방송 화면]을 캡처,
    "많은 여성 시청자들로부터 제품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는
    홍보 문구와 함께 언론사에 배포하고 있다.

    KBS2 TV <왕가네 식구들>의 이윤지도,
    F&F와 손을 잡고 [패딩 전도사] 역할을 이행하는 연예인 중 하나.

    SBS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런닝맨>도 [親디스커버리 방송]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8일 전속 모델인 공유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
    오렌지 계열의 패딩을 장시간 선보이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은 것.

    올 한 해 120억원 가량의 마케팅비를 쏟아부은 <디스커버리>는
    내년에는 150억~200억원의 홍보 비용을 책정,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수백억원대의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총 매출의 5% 이상을 광고비로 집행하면서 줄어든 [마진 폭]을,
    [소비자가(價) 인상]으로 맞추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필요 이상으로 지출된 마케팅 비용이
    결국 소비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불편한 진실은,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는 PPL이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다.




  • 드라마-예능프로, 거대 ‘홈쇼핑장’ 돌변


    최근 [아웃도어]나 [스마트폰] 등
    일부 제품군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이 거대한 [홈쇼핑장]으로 돌변한 느낌이다.

    TV를 틀면 드라마에 출연한 유명스타들이
    저마다 계약한 제품을 걸치고
    기능성과 디자인의 우수성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PPL 협찬을 받은 최신식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하고,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다가
    절친한 친구에게 요즘 유행하는 아웃도어 제품을 선물로 건넨다.

    애당초 PPL을 고려한 내용을 드라마에 집어넣거나
    불필요한 장면을 돌발 삽입하는 일도 다반사.
    특정 광고주는 자사의 제품이 자연스럽게 홍보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이 있는 [맞춤형 광고]를 제작사에 제안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한때 [타임슬립 드라마]가 유행한 이유가
    "사극에선 간접광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처럼 황당한 설정으로 PPL이 등장하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간접광고의 수위가 지나치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간접광고로 시작한 PPL이 사실상 [직접광고]로 변모하면서
    드라마나 여타 방송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 PPL이 폭발적으로 증가세를 보이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저렴하기 때문.
    일반적인 PPL 가격은 회당 2,5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프로그램의 인기도에 따라
    5,000만원 이상으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지만,
    10억원을 넘나드는 CF 광고와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의 간접광고 수입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10년 29억7,000만원에 그쳤던 PPL수입은
    지난해 262억원으로 8배나 껑충뛰었다.

    [돈을 들고 달려오는] 광고주를
    제작사나 방송사에서 마다할리 없다.
    이같은 방송 구조 때문에
    시청자의 잇딴 [볼멘소리]에도 불구,
    [낯뜨거운 PPL]은 갈수록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얄팍하게 로고만 가린채
    방송 내내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는 드라마.
    그런 류의 드라마를 쉬지 않고 [프라임타임]에 내보내는 방송사.
    딱 봐도 답이 나오는 구조이지만,
    어마어마한 [수익 구조]가 얽혀 있는 관계로,
    [유관 기관]들마저
    어쩌지 못하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에게만 [현명한 시청]과 [현명한 소비]를 기대하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라 할 수 있다.

    드라마가 [60분 짜리 광고]로 돌변하는 일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방송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대처 방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KBS MBC SBS 지상파 프로그램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