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방식보다 수익성 떨어져, 의사결정 구조도 문제"내부갈등 불가피,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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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국내 금융지주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 도입한 금융지주가 오히려 부작용만 부각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은행 금융지주사는 11개, 한투금융지주와 메리츠금융지주를 합칠 경우 금융지주사는 총 13개가 있다.

    국내에는 2001년 금융지주법이 마련된 이래 우리금융지주가 설립되면서 금융지주의 역사가 시작됐다. 같은해 신한금융지주가 설립되고 2005년 하나금융지주, 2008년 KB금융지주가 설립됐다.

    ◇ 금융지주 10년 성적표는 "글세"

    금융지주 출범의 최대목표는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이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추세에 맞춰 대형화를 이루는 데에도 금융지주가 필요했다. 구조조정이 용이하고 사업 다각화와 위험 분산 효과도 있어 인수·합병에도 도움이 됐다. 적은 지분 또는 지배권으로도 자회사를 다수 지배할 수 있다는 점도 금융지주 체제의 매력이다.

    많은 기대를 모으며 출범한 금융지주 체제의 성적표는 생각보다 초라하다. 기대만큼의 시너치 창출은커녕 오히려 수익성이 더 떨어졌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금융지주회사 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지주 방식의 회사가 기업은행 등 자회사 방식의 회사보다 총자산순이익률(ROA)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다.

    2008~2012년 우리·신한·하나·KB 등 은행지주사의 ROA와 ROE는 각각 0.55%와 8.3% 였다. 자회사 방식 기업은 0.64%와 10.5%로 오히려 더 높았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40씩 쪼그라든 상황이다.

    금융지주사 내 카드·보험·증권 등 업종 간 시너지 효과가 커지지 않으면서 '무늬만 금융지주'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국내 금융지주사의 자산 중 은행의 비중은 85%에 달했다.

    ◇ 내부갈등까지…금융지주 무용론

    이번 KB국민은행의 주 전산시스템 교체에 따른 이사회 갈등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의 문제점이 또 다시 터졌다"며 금융지주 무용론(無用論)이 나오고 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이사회와 감사 사이의 의견 충돌일 뿐"이라고 강조했으나 이미 업계에서는 지주와 은행 간의 다툼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과거 지주 회사 내에서 경영진 간의 다툼이 잦았기 때문이다.

    어윤대 전 회장과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ING생명 인수를 놓고 심한 다툼을 겪었다.

    KB금융은 예전에도 황영기 전 회장과 강정원 전 행장이 서로 반목했다. 어윤대 전 회장과 사외이사들은 ING생명 인수를 놓고 심한 갈등을 겪었다.

    우리금융의 이팔성 전 회장과 이순우 전 행장(현 회장 겸임)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았다. 이순우 회장이 우리은행장이 됐을 때는 행장직을 놓고 경합했던 인사들이 대거 지주사 임원이나 계열사 대표로 발탁되는 현상도 벌어졌다. 이를 두고 우리은행에서는 "PS(이팔성 회장)가 SW(이순우 행장)을 견제하려고 단행한 인사"라는 평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신한사태'는 경영진 갈등의 최고점으로 꼽힌다. 라응찬 지주 회장을 따르는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차기 지주 회장으로 거론되는 신상훈 지주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게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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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지주 의사결정·지배구조 구조 문제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지주사의 가장 큰 문제로 의사결정과 지배구조를 꼽는다.

    국내 금융지주사는 은행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지만 지주사와 은행이 각각 이사회를 두고 있다. 두 이사회가 서로를 적절히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한다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지주사가 권한을 휘두르는 통로로 쓰인다.

    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내분에 쌓인 KB금융의 경우 시스템 교체 결정은 국민은행 이사회에서 했다. 하지만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들의 선임에는 지분을 100% 가진 지주의 영향력이 발휘될 수밖에 없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주와 100% 자회사인 은행이 이사회를 따로 둘 경우 자회사의 사외이사가 금융지주의 대리인 역할을 하거나, 아예 지주와 은행 이사회가 따로 돌아가는 문제가 생긴다"며 "지주사에 제대로 권한을 주고, 문제가 생기면 지주에 책임을 묻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장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겉으로는 은행·증권·보험·자산운용 등을 모두 포괄하는 모양을 띠고 있지만 대부분의 자산은 은행에 집중돼 있다.

    지주사 회장이 자회사의 경영 전반을 살피고 은행장이 은행 실무를 담당한다는 원칙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지주사 회장은 비중이 큰 은행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고 은행장과 대립도 불가피하다.

    이에 은행이 지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해 지주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도 고개를 들고 있다.

    2009년 설립된 산은금융지주는 줄곧 지주 회장이 산업은행장을 함께 맡고 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도 지난해 5월 회장에 선임된 이후 회장과 행장을 겸임하고 있다. 지주사로 전환한 지방은행도 회장과 행장을 모두 한 사람이 하고 있다. 적어도 이들 회사에서는 밖으로 드러난 내부 갈등은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민은행과 KB금융에 대한 특별검사에 돌입한 금융감독원은 지배구조 문제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권력다툼 등의 문제점이 많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주회사 체제가 금융의 겸업화 추세 속에 선진적인 제도임은 틀림없다"며 "지주회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당국에서도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