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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당시인 지난 2012년 7월, '기름값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시행된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제도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자상거래 도입과 기름 가격 인하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실질적인 소비자 체감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울뿐더러, 정부 눈치 보느라 전자상거래에 성실하게 참여한 정유사들만 '대기업 인센티브 혜택' 의혹을 받는 등 누구를 위한 제도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13일 산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그간 전자상거래로 경유와 휘발유를 거래한 정유사들에게 원유 수입 때 부과했던 석유수입부과금을 돌려주는 환급 제도를 운영해왔다. 시행 초기에는 ℓ당 16원의 부과금 전액을 돌려 줬으며 지난해 7월부터는 그 절반인 ℓ당 8원을 환급해주고 있다.
그 결과 환급 제도 시행 초기부터 올해 3월까지 정부가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S-OIL), 삼성토탈 등 전자상거래 참여업체에 되돌려준 환급금은 688억원에 달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등 일부에서는 "대기업만 배불리는 세금 낭비"라고 지적하며 그 화살을 애먼 정유사들에게 돌리고 있다. 정유사들이 수백억원대의 인센티브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부과금 환급 제도는 전자상거래에 참여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정책인데, 대기업은 거래량 자체가 커 환급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열심히 참여한 기업들만 오히려 욕을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석유 수입사의 경우 국내 정유사로부터 물량을 받아 전자상거래를 통해 거래하거나, 장외에서 제품 거래를 미리 협의한 후 플랫폼만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형태로 환급금만 챙기는 등 부작용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환급 제도의 허점인데, 환급금 규모만을 보고 무작정 정유사들을 욕하는 답답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정유업계는 그동안 시장을 왜곡하는 전자상거래 도입 자체를 반대했으며, 지금도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정부는 석유제품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해 기업 간 경쟁을 유발시켜 기름값을 낮추기 위한 명분으로 전자상거래를 도입했지만 그 효과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 제도 자체가 석유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황당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실제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유가와 글로벌 시장 상황 등 무수하게 많은 다변적 영향을 받으며 매일 가격이 변동된다. 세계적인 유가 전문가들조차 국제유가 예측에 실패하는 마당에 정부 정책 하나로 기름값을 조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전자상거래 도입으로 실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석유제품 가격이 낮아졌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석유제품 전가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올해 6월 종료 예정이었던 환급 제도를 내년 6월까지 1년 연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석유 및 석유대체원료 사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앞으로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환급 제도는 내년 6월까지 연장된다. 산업부에서는 큰 무리없이 국무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고있다.
산업부 측에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도입 후 시장 변화와 그 효과에 대해 묻자 "내부적으로는 전자상거래 도입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그 근거 또한 있지만 이를 외부에 공기하기는 어렵다"면서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를 조금 더 키우기 위해 인센티브(석유수입부과금 환급 제도)를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환급 제도를 1년 더 운영한다고 해도 전자상거래가 활성화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참여 기업들이 환급금을 받을 수 있는 물량까지만 전자상거래를 이용할 뿐, 그 이상의 거래는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의 수입판매부과금의 징수 징수유예 및 환급에 관한 고시 제 21조(부과금의 환급대상)에 따르면 석유정제업자가 생산한 석유제품 및 석유수출입업자가 수입한 석유제품을 한국거래소 KRX석유시장을 통해 거래한 경우, 다만 월간 휘발유 6624만3333 리터, 경유 2억2522만7333 리터 (연간(2014년 7월 1일부터 2015년 6월 30일) 휘발유 7억9492만 리터, 경유 27억272만8000리터) 에 한하되 월간 및 연간한도를 초과하는 물량은 이월하지 않으며 석유 유통질서를 현저히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환급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환급된 부과금을 환수할 수 있다. 업체별로는 고시에 나와 있는 연간 환급물량의 30% 이하로만 환급이 가능하다.
쉽게 얘기해 어떠한 업체든지 전체 환급물량의 30%에 대한 환급금만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은 자사가 받을 수 있는 최대 환급금까지의 물량만을 전자상거래로 거래하고 있다.
정부는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를 키울 요량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정작 참여 업체들은 인센티브를 받는 목적으로만 전자상거래를 이용하고 있는 꼴이다. 업체들은 환급 제도가 종료되면 굳이 전자상거래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의 정유 업체나 석유 수입사 등은 본인들이 환급 받을 수 있는 최대 물량을 미리 확인한 뒤 그 선까지만 전자상거래로 거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전자상거래를 제품 거래 플랫폼으로 활용한다기보다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창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또한 전자상거래로 거래시 경쟁매매는 거래대금의 0.02%, 협의매매는 0.025%의 거래 수수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굳이 수수료를 내 가면서 전자상거래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석유제품 전자상거래를 두고 참여업체는 물론 정치권과 여론까지 나서서 폐지를 외치고 있지만 정부 홀로 이같은 지적에도 귀를 닫고 밀어붙이고 있다.
대형 장치산업인 정유사의 특성상, 휘발유 1ℓ를 팔아 10원 수준의 수익 조차 내기 어려운 구조속에서 ℓ당 8원에 달하는 환급은 엄청나다. 정부입장에서는 이 같은 가격차이가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사실상 검증은 불가능했다.
석유제품 가격이 때와 장소, 주변 상황 등 경쟁에의해 결정되는 만큼, 정부 환급금이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진다는 발상 자체가 시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 서울 외곽지역이나, 경쟁이 치열한 지역의 휘발유 가격은 1500원 초반대 판매가 되고 있지만, 서울역 인근 경쟁 주유소가 없는 곳의 경우 이미 2000원을 넘어서는 등 같은 제품이 25%가 넘는 차이를 보이는 휘발유 가격은 어떠한 제도로도 통제가 불가능하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부랴부랴 시장에 개입하면서 전대미문의 알뜰주유소가 등장하고 전자상거래가 도입됐지만, 기름값을 낮추기는 커녕 오히려 정부가 나서 시장을 교란시키는 꼴이 됐다.
법과 제도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도 검증이 안되고 효과도 없다면 과감히 수정을 해야한다.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