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연대 "불법 광고물 철거해라" vs 보훈처 "계속 달아라" 송파구 "불법 아냐" vs 서울시 '수수방관' vs 롯데 "부담스러워”
  • ▲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걸려있는 태극기. ⓒ 사진 롯데물산 제공
    ▲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걸려있는 태극기. ⓒ 사진 롯데물산 제공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가 뜬금없는 철거 논란에 휩싸여,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롯데가 지난해 8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타워 외벽에 내건 초대형 태극기에 대해, 처음 민원을 제기한 시민단체는 롯데가 태극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회사 측이 실정법과 국기 관련 훈령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잠실 지역 옥외광고물 관리를 담당하는 송파구청 관계자는 “태극기는 광고물이 아니기 때문에 단속을 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을 서울시 담당부서에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롯데 측이 서울시에 자진 철거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속권을 가진 구청이 “단속 대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판단을 내린 이상, 롯데월드타워 대형 태극기를 철거해야 할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타워에 내걸린 태극기는 불법광고물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채 철거를 앞두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초대형 태극기가 외벽에 내걸린 것은 지난해 8월 초였다.

롯데 측은 처음 태극기만 부착했으나, 이후 ‘나의 광복-통일로 내일로-도약 대한민국’과 같은 문구를 태극기 아래 함께 내걸었다. 현재 태극기와 함께 붙어있는 문구는 ‘대한민국 만세’다.

이들 문구를 붙인 이유에 대해 잠실롯데월드를 운영하는 롯데물산 관계자는 “처음엔 태극기만 내걸었으나,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구를 함께 넣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서울시 관계자의 ‘협조 요청’이 있어, 그 의견을 반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롯데는 문구와 함께 그룹 엠블럼인 ‘LOTTE’를 외벽에 붙였다.

롯데타워 태극기가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건 올해 4월. 지역 시민단체인 위례시민연대가 롯데타워 태극기의 철거를 주장하면서부터다.

위례시민연대는 롯데타워 태극기가 옥외광고물관리법 및 국기에 관한 훈령을 위반했다며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을 서울시에 접수했고, 서울시는 관할 구청인 송파구의 의견을 들은 뒤, 롯데물산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문서를 보냈다.

서울시로부터 관련 내용을 확인한 롯데물산은 시민단체가 특히 문제 삼은 그룹 엠블럼을 지우고, 태극기와 문구도 자진 철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 측의 자진 철거로 마무리되는 듯했던 잠실 롯데월드타워 태극기 논란은 지난달 국가보훈처가 태극기 존치를 요청하면서 다시 불붙었다.

보훈처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롯데타워의 태극기 부착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사이 태극기 철거 소식을 접한 엄마부대봉사단, 구국채널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태극기 철거 결사반대”를 외치며, 롯데타워 인근에서 집회와 시위를 이어갔다. 

이때부터 롯데타워 태극기 철거 문제는 이념갈등의 대상이 됐다. 한 유통기업이 광복70주년을 기념해 만든 초대형 태극기가, 정치적·이념적 논쟁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태극기를 내건 롯데 측은 양쪽의 눈치를 보면서,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관할 구청인 송파구는 “단속 대상이 아닌데 태극기를 떼라 마라 할 수 없지 않느냐”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대형 태극기를 벽면에 부착한 게 롯데만도 아니고, 다른 기업들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민원을 처음 제기한 위례시민연대는 “(롯데 측이) 떼겠다고 답변을 했으니 이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철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 불붙은 갈등을 해결해야 할 서울시는 사안의 해결을 당사자들에게 맡긴 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그러는 사이 시민들 사이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롯데 측은, 시민단체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에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장삿속으로 태극기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태극기를 붙였다고 매출이 늘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태극기 아래 문구를 붙인 것도 서울시 관계자가 먼저 요청을 해 왔다. 서울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고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를 한번 전해 보자는 뜻에서 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롯데 측은 “어차피 논란이 된 사안이니 철거는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혀, 결정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롯데타워 외벽 태극기는 가로 36m, 세로 24m 규모다. 롯데 관계자는 “태극기와 문구 모두를 철거하는 데 1억 내지 2억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