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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총괄회장의 '역량 입증을 통한 우호지분 확보' 시스템이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 불씨가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 고위관계자들은 지난해 7월말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제간에 경영권 다툼이 본격적으로 불붙자 한·일 롯데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의 지분 구조와 경영권 구도를 설명한 바 있다.
당시 그들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두 아들에게 거의 남겨주지 않고, 광윤사·종업원지주회·관계사 및 임원지주회가 3분(三分)하는 형태로 둔 것은 결국 능력과 실적으로 직원이나 임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라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25일 일본 도쿄(東京)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동생 신동빈 회장과의 표 대결을 통해 세 번째 패배를 맛봤지만, 주총 직후 여전히 "끝까지 싸우겠다"며 '무한 주총'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롯데홀딩스의 주주는 △광윤사(고준샤·光潤社, 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임원 지주회(6%)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 10.7%) △가족(7.1%) △롯데재단(0.2%) 등이다.
롯데홀딩스와 상호출자 관계로 의결권이 없는 LSI를 제외하면, 광윤사(28.1%)와 직원지주회(27.8%), 관계사 및 임원지주회(20.1+6%)가 3분의 1씩 지분을 고루 나눠 가진 셈이다.
이에 비해 신동주·동빈 형제의 개인 지분은 각각 1.62%, 1.4%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우선 주요 주주 가운데 광윤사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씨, 신동주·동빈 형제가 100% 지분을 소유한 '가족기업'이다.
광윤사에 이은 2대 주주 종업원지주회는 10년 이상 근무한 과장 이상 직원 130여명으로 이뤄졌는데, 각 회원이 의결권을 개별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은 종업원지주회 대표(이사장) 1명이 주총에서 표를 던진다.
임원지주회의 경우 롯데홀딩스의 정책 집행을 맡은 '컨트롤타워'로서 홀딩스 관계사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관계사와 임원지주회는 대부분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국 한·일 롯데의 총수 자리에 올라 경영권을 장악하려면 가족(광윤사), 직원(종업원지주회), 임원 및 관계사 3개 주요 주주군(群) 가운데 적어도 두 곳의 지지를 얻어야하는 구조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실제로 두 아들에게 경영 실적을 바탕으로 스스로 우호 지분을 늘려가는 '후계 경쟁'을 원했다면, 재계 다른 그룹들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삼성의 경우 그룹 지주사격인 삼성물산 등 주요 기업에 대한 장남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은 이미 이부진 이서현 두 동생보다 월등히 많다.
하지만 롯데 관계자들이 '지분 황금 분할'이라고 표현한 이 실적·역량 본위 후계 경쟁의 맹점은 '한 번 밀려난 사람이 쉽게 승복하고 포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후계 경쟁자 중 한쪽이 특정 시점에서 우호 지분이 더 많을 수는 있지만, 자신이 직접 보유한 지분이 1%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결코 절대적이고 항구적 우위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작년 8월, 올해 3월에 이어 이달 25일 롯데홀딩스 주총까지 신동빈 회장에게 모두 졌지만 여전히 "내가 후계자"라고 주장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신동빈 회장이 이끄는 롯데그룹은 신동주 전 부회장측의 '무한 주총, 무한 표대결' 움직임에 대해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비난하고 나섰지만, 현 지분구조와 일본 상법 등으로 미뤄 현 경영진 해임안의 반복 상정을 막을 방법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창업자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장기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내포한 지배구조를 직접 바로 잡거나 명확한 후계자를 세울만한 '힘'이 더 이상 없다는 점이다.
우선 지분 측면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은 현재 롯데홀딩스나 광윤사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홀딩스 지분은 3% 남짓에 불과하고, 광윤사 지분율도 소숫점 이하로 알려졌다.
여기에 성년후견인(법정대리인) 지정 심리가 진행될 정도로 정신건강이 의심받고 있기 때문에, 3대 주요 주주 가운데 당장 자신의 가족회사인 광윤사의 표조차 두 아들 중 어느 한쪽으로 몰아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14일 광윤사는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잇따라 열어 신동빈 회장을 등기 이사에서 해임하고 신동주 전 부회장을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신할 광윤사 새 대표로 선임한 바 있다. 아울러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 1주를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넘기는 거래도 승인함으로써 신 전 부회장은 광윤사 최대주주(50%+1)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 1월 동생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직접 원고로 나서 광윤사(피고)를 상대로 '주주총회 및 이사회 결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지분 획득과 대표 선임 모두 서면으로 제출된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나, 현재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에 논란이 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며 법원의 판단을 구한 것이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회나 주주총회에 대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영향력도 미미하다. 신동빈 회장이 장악한 롯데홀딩스 이사회가 지난 7월 28일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한 것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
따라서 재계에서는 "신 총괄회장이 자신의 연령 등을 고려하지 않고 경영에 과도한 의욕을 보이다 후계자 선정 '적기'를 놓치고 두 아들에게 '무한 경영권 다툼'이라는 짐을 남겼다"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10월 언론 공동 인터뷰에서도 "후계자가 누가 되는 거 그런거…나는 아직 10년, 20년 일 할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