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ESS 화재, 문제해결 방식 차 뚜렷원인 안밝혀 졌지만… 삼성, 2000억 선제 투입LG, 대책 보단 추가 화재 중심 '원인' 규명 초점3년 전 '갤노트7' 사태 교훈… '빠르고·통 크게''원인' 앞세웠던 LG 건조기… 보상 해주고도 리스크 여전
  • 삼성과 LG가 잇딴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로 각각의 방식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이 같은 리스크 상황에서의 문제 해결 방법에서 큰 차이점을 나타내 주목받는다.

    삼성은 3년 전 '갤럭시노트7'이 발화하는 이슈로 전량 리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8조 5000억 원에 가까운 손실을 감수하며 발빠른 대처에 나섰던 경험을 살려 이번 ESS 화재에 대응했다. 삼성SDI 배터리가 화재 원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2000억 원을 들여 ESS에 특수소화시스템을 설치하겠다고 선언해 국내 ESS 산업 전체 리스크를 고려하는 모습이다.

    LG는 상대적으로 문제 원인을 규명하는데 초점을 뒀다. 우선 연내에 정밀 분석을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제품을 새로 개발해 제품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손실 비용을 책임진다는 입장이다. 앞서 LG전자 건조기 일부 제품에 발생한 자동세척 기능 논란 때도 정확한 원인 규명을 우선으로 하고 구매자들에게 무상 수리를 진행했던 바 있다. 하지만 이 사태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아직까지 집단 분쟁을 이어가고 있어 LG식 문제 해결 방법에 의문점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연이어 발생한 ESS 화재로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와 LG화학이 각각의 대책 마련과 보상안을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이 두 업체의 문제해결방식이 비슷해보이지만 큰 차이점을 나타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양사 모두 지난 14일 ESS 화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안전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삼성SDI는 2000억 원을 들여 ESS에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확산되지 않게 차단할 수 있는 특수 소화시스템을 개발해 신규 제품에 전면 도입키로 했다. 이미 국내 1000여 곳에 설치해 운영 중인 ESS에도 이 소화시스템을 적용해 2000억 원이라는 거금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SDI는 이번 화재가 자사 배터리 때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으로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같은 투자를 진행하는 개념이라 눈길을 끌었다. 무엇보다 이번 화재 이슈로 국내 ESS 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2000억 원에 달하는 비용 지출은 삼성SDI의 실적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당장 올 3분기에도 ESS 화재 여파로 비용도 늘고 수주에 영향을 미쳐 컨센서스를 하회하는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삼성SDI가 이처럼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한데는 앞서 대규모 리콜을 경험하며 새긴 교훈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6년 하반기 삼성전자가 내놓은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이 연달아 발화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삼성은 해당 제품의 전량 리콜과 보상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에서만 7조 5000억 원, 배터리를 공급했던 삼성SDI가 1조 원 이상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했지만 소비자들의 안전과 신뢰를 이어가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더불어 이후에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해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큰 경험이 됐다.

    이번 ESS 화재에도 삼성의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직접적인 발화의 원인이 자사 제품에 있지 않음에도 전체 산업 전망을 큰 시각으로 보고 선제적인 투자에 나섰다는 점에서 업계와 고객의 신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 ▲ 지난 9월 화재가 발생한 충남 예산 ESS 모습 ⓒ예산소방서
    ▲ 지난 9월 화재가 발생한 충남 예산 ESS 모습 ⓒ예산소방서
    LG는 이번 ESS 화재에 보다 직접적으로 엮여있다. 지난 2017년 8월부터 발생한 ESS 화재 23건 중 14건이 LG화학에서 제조한 배터리를 사용한 시설이었고 최근 추가 발생한 화재 2건도 LG화학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ESS 화재건만 놓고 보면 삼성보다 LG에 책임론이 쏠리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대책에 대해선 LG가 아직까진 삼성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고 하기 어렵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오히려 LG에서는 대책보다는 최근 발생한 추가 화재건을 중심으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 데에 더 초점을 두는 모양새다. 이를 위해 실제보다 훨씬 엄격한 환경에서 시험 등의 정밀 분석을 진행해 올해 말까지는 결론을 내리겠다는게 LG화학의 입장이다.

    더불어 대책은 삼성SDI와 마찬가지로 화재 확산 위험성을 차단하는 제품을 개발해 출시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일종의 블랙박스 같은 '파이어프루프 HDD'를 설치해 운영하는 방안이다. 외부 전기 충격으로부터 배터리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 장치와 절연 이상을 감지하는 장치에도 힘을 줬다.

    LG화학은 화재 원인과 상관없이 이 같은 대책 장치들을 갖춘 신규 제품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이번 ESS 화재에 방점은 '원인 규명'에 찍히는 상황이다. 제품 교체 등의 대안도 결국은 자체적인 원인 규명이 이뤄진 후에 하겠다는 입장이라 실제 대안책이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다. LG의 ESS를 설치하고 화재 불안에 떨고 있는 고객들에겐 또 다른 불만 사항이 유발될 여지가 있는 대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LG화학의 이같은 처사는 지난 여름 가전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LG전자의 건조기 이슈를 떠오르게 한다. 사용자들을 중심으로 LG전자가 판매하고 있는 트롬 건조기 일부 제품에서 부품에 먼지가 쌓이고 바닥에 물이 고이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불만이 퍼지기 시작했고 이 같은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어 한국 소비자원에까지 오르게 되면서 문제가 본격 수면 위로 올랐던 일이다.

    당시에도 LG전자는 철저한 원인 규명을 앞세웠다. 온라인 상에서 사용자들이 불만 여론을 키우기까지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LG전자는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그 사이 단순히 문제를 겪었던 사용자들 뿐만 아니라 구매를 하고자하는 소비자 전체로 문제가 확산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후 LG전자는 문제가 됐던 건조기 내 부품인 콘덴서에 결함이 없다는 조사 결론을 내리고 그럼에도 불편을 겪었던 사용자들에게 무상 수리를 진행키로 했다. 더불어 지난달 2일부터는 문제가 됐던 콘덴서를 비롯해 다양한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새롭게 개선된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7월 소비자 200여 명이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해당 건조기 문제로 구입 대금 환불 등의 강도높은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아 집단분쟁 조정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 절차는 향후 한달 가량 이어지다 결론을 낼 전망이지만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례로 볼 때 문제 발생에 따른 금전적 비용보다 해당 이슈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명확하게 마무리 짓지 못해 발생하는 평판 리스크가 더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이미 갤럭시노트7 때의 경험으로 발빠른 후속 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실감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LG는 문제 자체에 대한 분석에 골몰하는 경향을 나타내 비교가 될 수 있다"며 "비슷한 해결 방안을 내놓고도 LG가 책임을 회피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사안인데 LG전자에 이어 LG화학도 비슷한 절차를 밟고 있어 안타깝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