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신형 아이패드 프로 '크러쉬' 광고, 파괴적 메시지·표절 논란으로 뭇매2008년 LG '르누아르' 휴대폰 콘셉트 그대로 베낀 듯한 광고 선봬… 애플 인하우스 크리에이티브팀 제작제품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혁신까지 퇴보한 애플의 민낯 드러내
  • "애플의 혁신은 잡스와 함께 죽었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애플(Apple)의 공동창립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이들이 애플의 혁신을 그리워하고 있다. 기술뿐만 아니라 리더십, 비즈니스, 디자인, 마케팅까지 영역을 불문한 잡스만의 '혁신'은 애플을 상징하는 브랜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빈자리가 곳곳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애플이 공개한 신형 아이패드 프로(iPad Pro) 광고 캠페인 '크러쉬(Crush)'가 인간의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를 조롱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애플의 인하우스 크리에이티브팀이 제작한 약 60초 분량의 해당 광고는 거대한 단상 위에 메트로놈과 LP, 트럼펫, 피아노, 게임기, 페인트, 모니터, 오디오, TV, 램프, 카메라, 인형, 기타, 책 등을 모아놓고 이를 프레스기로 짓눌러 파괴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프레스기로 인해 모든 물건이 사라진 단상 위엔 신형 아이패드 프로가 놓여 있다.

    이 광고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인간이 창작 활동에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을 신형 아이패드 프로에 담았고, 역대 가장 얇은 두께(5.1mm)를 자랑한다는 것을 프레스기를 통해 은유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광고를 본 시청자들은 인간이 사용하는 창의적인 도구들을 프레스기로 짓누르는 과정이 너무 파괴적이며, 창작자인 인간을 조롱하고 인간이 일궈 온 창의력의 역사를 최신 기술로 짓밟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크리에이티브 업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수십 년간 '크리에이티비티'를 핵심 메시지로 내세워 온 애플의 브랜딩 전략이 변질됐다는 날선 비판을 받고 있다.

    해당 광고는 14일 현재 기준 애플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256만 조회수, 팀 쿡(Tim Cook)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X(옛 트위터) 계정에서 5956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 '크러쉬' 광고가 지난 2008년 LG전자의 'LG KC910 르누아르' 휴대폰 광고를 베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BBH 런던(BBH London)이 대행한 'LG 르누아르' 광고는 바이올린, 카메라, 페인트, 드럼, 키보드, 오디오, 조명 등 다양한 소품을 한 데 모아놓고 프레스기로 눌러 파괴한 뒤 그 모든 기능을 합친 '르누아르' 폰을 내세운다. 애플 '크러쉬' 광고는 'LG 르누아르' 광고의 콘셉트뿐만 아니라 아이디어와 주요 소품, 스토리텔링, 핵심 메시지까지 그대로 베낀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크러쉬' 광고 논란이 계속 되자, 애플은 이례적으로 공개 사과를 하고 이 광고를 TV에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토르 마이런(Tor Myhren) 애플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글로벌 광고 전문 매체 애드 에이지(Ad Age)를 통해 "크리에이티브 오디언스들에게 불쾌감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며 '크러쉬' 광고 캠페인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크리에이티비티는 애플의 DNA이며, 전 세계의 모든 크리에이티브에 힘을 실어주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사용자들이 아이패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번 (광고) 영상에서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LG 르누아르' 광고 표절 논란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명이나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몸 담았던 시절 선보인 '1984' 슈퍼볼 광고(1984년)와 'Think Different' 캠페인(1997년 론칭), 'Get a Mac' 캠페인(2006년 론칭) 등은 크리에이티브 업계가 인정한 '전설의 고전 광고'로 불리며 애플 브랜드를 차별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혁신적인 제품뿐만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혁신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광고·마케팅 전략을 선보이며 '세상에서 가장 광고를 잘 만드는 브랜드'로도 유명했던 애플에게 이번 '크러쉬' 논란은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