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간 39조원 순매도 … 4월에만 약 10조원 팔아치워위험자산 선호 심리 하락에 경기방어주·채권만 대거 매집“관세 리스크 완화로 수급 개선” vs “당분간 팔자세 지속”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외국인 투자자가 4월에도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약 10조원 가까이 순매도하며 9개월 연속 ‘셀 코리아(Sell Korea)’ 기조를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지분율도 30% 초반까지 하락했다. 국내 증시의 본격적인 반등을 위해서는 얼어붙은 투자심리 개선이 필수지만, 외국인의 복귀 시점에 대한 시장의 전망은 엇갈린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오전 9시 50분 기준 전장(2548.86)보다 0.8포인트(-0.03%) 내린 2548.06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전장 대비 1.39포인트(0.05%) 오른 2550.25로 출발해 보합권에서 등락 중이다.

    투자자별 거래실적을 살펴보면 개인과 기관투자자는 각각 1487억원, 273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외국인은 홀로 1833억원을 순매도하고 있다.

    앞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 28일까지도 코스피에서 9조8797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 팔았다. 다음날인 30일까지 극적인 수급 반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월간 순매도 규모 기준 역대 2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외국인의 코스피 월간 순매도액 역대 1위는 코로나19 국면이던 지난 2020년 3월의 12조5550억원이다.

    연속 순매도 기간 기준으로도 역대 2위 기록을 세울 공산이 크다. 현재 외국인은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연속 순매도세를 지속하고 있는데, 외국인의 역대 최장 순매도 기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7년 6월부터 2008년 4월까지의 11개월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코스피 탈출 러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지분율도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 시가총액 기준 외국인의 지분율은 본격적인 매도세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7월 말 35.65% 수준에서 이달 28일 기준 31.52%로 4.13%포인트나 급락했다. 아직 역사적 저점인 29%대까지는 하락하지 않았지만, 지난 2023년 8월 30일(31.49%) 이후 최저치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가장 많이 팔아치운 종목은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였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 28일까지 외국인의 코스피 누적 순매도액은 39조214억원인데, 이 중 62.71%에 달하는 24조4705억원이 삼성전자에서만 빠져나갔다. 순매도 종목 상위 2위인 현대차의 순매도액(2조931억원) 규모보다 약 12배나 높게 집계됐다.

    반면 이 기간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네이버로 1조2571억원을 순매수했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1조905억원) ▲LIG넥스원(4644억원) ▲한국전력(4571억원) ▲카카오(4351억원) ▲현대로템(3959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인터넷, 방산뿐만 아니라 식품·유틸리티·통신 등 이익 모멘텀이 높거나 경기방어주 성격을 띠는 업종을 대거 매집했다.

    이는 연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펼친 고강도의 관세 부과 정책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진 영향이다. 실제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은 대거 팔아치웠지만, 원화 채권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60조원가량 사들인 바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금리와 달러가 엇갈리는 이례적 현상에 미국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부각됐고 이에 따라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며 금리 인하 기대가 있는 한국의 원화 채권 수요가 강해졌다”며 최근 외국인 자금 흐름을 안전자산 선호로 해석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9개월째 순매도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채권은 60조원 정도 순매수한 점을 미뤄봤을 때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상호관세 우려가 높아진 4월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은 기계·유통·IT 하드웨어·반도체·화학 등을 순매도하고 유틸리티·통신·필수소비재 등 방어적 업종만을 순매수했는데, 외국인 투자가들의 관심은 방어와 내수 업종에 집중돼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요국들과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인 만큼 외국인들의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개선되면 국내 증시도 빠르게 반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복귀 시점에 대한 시각은 엇갈렸다.

    조창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최근 관세 관련 협상 진전 소식, 1분기 실적 시즌 호조, 환율 하락·외국인 수급 컨디션의 저점 가능성 등이 외국인 지분율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실제 최근 외국인 순매도의 강도가 둔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들이 강도 높은 순매도 대응을 끝낸 후 다시 순매수하기 시작한다면 지분율이 많이 낮아진 업종의 선제적인 순매수 유입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다운 LS증권 연구원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기준 한국 증시는 자기자본이익률(ROE) 대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가장 낮은 증시로 한국 증시가 언제나 낮은 밸류 레벨에서 거래돼왔음을 감안해 과거 PBR 등락 범위 내에서 비교해도 한국은 크게 낮은 수준에서 거래 중”이라며 “최근 한국의 이익 컨센서스는 주요국 중 유일하게 상승했으며 관세 불확실성으로 인해 올해 1분기 실적의 연속성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하방 경직은 높이는 요인이라 평가되는 데다 부진한 성장률이 오히려 추경을 비롯한 성장 제고 정책으로 이어질 당위성을 높인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허재환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나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대중국 관세율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졌고 파월 연준의장 흔들기도 멈췄다. ‘셀 USA’, 즉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것도 멈추면서 미국 증시도 최악은 벗어났다”면서도 “그러나 새로운 안전자산 찾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위험자산 선호가 바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투자가들은 국내 수출 감소뿐 아니라 대중 무역수지 등 중국과의 경합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며 “미국 달러가 약해져도 국내 수출과 기업이익이 바닥을 지날 때까지 외국인 투자가들의 귀환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며 내수 관련 업종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해 보인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