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어 USTR 대표 방한에 중간 점검 차원 통상 논의 전망"미중보다 미영 무역합의 거울 삼아 협상 준비할 필요성""통상협의, 한미 FTA 방패로 삼아 관세율 0% 최종점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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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양보 없는 치킨게임으로 치닫던 미국과 중국이 12일(현지시간) 상호관세를 크게 내리기로 합의하면서 한국도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90일 유예기간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미중 대치 국면이 일부 해소되고 일정 부분 타협점을 찾으면서 긍정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미국 무역·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방한을 앞두고 있어 한미 통상 협의 방향성에 관심이 쏠린다.미중 양국이 12일 공동으로 발표한 '제네바 경제 무역 회담 연합 성명'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총 145%에서 30%로 낮추고 중국도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25%에서 10%로 인하할 예정이다. 양국이 관세전쟁을 벌이며 상대국에 추가로 매긴 관세 등을 115%포인트(p)씩 유예한 것이다.중국은 이와 함께 희토류 수출 제한 등이 포함된 비관세 보복조치도 철회하기로 했다. 미중은 이번 합의로 인하된 관세를 14일부터 90일간 적용하고 잔여 관세 추가 인하를 위한 후속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촉발된 관세전쟁 이후 미국과 중국이 처음으로 마주 앉은 고위급 무역회담이었다. 양국이 첫 회담부터 예상보다 빠른 진전을 이루면서 중국과 미국을 1·2대 교역국으로 둔 한국으로선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 수출 의존도가 높고 공급망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당초 뉴욕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국 관세율을 50%대까지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80%가 적절하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결과적으로 최종 대중 관세율이 30%가 되면서, 한미 간 진행 중인 통상협의도 긍정적으로 진전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지난달 한미 2+2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한미 양국은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의제를 좁혔고 현재 실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그리어 USTR 대표가 오는 15~16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방한하는 것을 계기로 한미 2+2 통상협의에 이은 중간 점검 차원의 고위급 통상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APEC 회의에는 정인교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하지만 그리어 USTR 대표와의 협의는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직접 나설 가능성이 있다.한미 양국 모두 통상 협의 속도전에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정부는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한미 관세 협상 결론을 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안 장관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국과 2+2 통상 협의 결과, 절대 대선 날인 6월 3일까지 관세 협상의 결론을 낼 수 있는 절차적 준비가 안돼 있다"고 말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도 최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통상 협의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며 "신속한 합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전문가들은 미중 무역합의와 함께 미영 무역합의를 거울 삼아 대미 관세 협상 준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서 미국이 국가별 상호관세 발표 이후 처음으로 영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이 영국산 자동차와 철강 관세를 낮추는 대신 영국은 에탄올, 소고기, 농산물, 기계류 등의 시장개방을 확대하기로 한 바 있다.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미중 잠정합의는 상호관세 115%p 인하로 비관세 장벽 완화나 철폐는 두고봐야 하는 상황인만큼, 중요한 문제까지 건드린 궁극적인 합의는 아니다"며 "그런 측면에서 영국은 우방국인데다 미국 상품 구매 확대를 협상 지렛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향후 있을 한미 통상 협상에서 더 참고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한미 통상협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방패로 삼을 필요성도 제기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 이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 모두 경기 침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빨리 합의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라며 "한국으로서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앞서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해 양국 의회까지 통과된 한미 FTA 관세율 0%를 최종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무역 상대국에 대한 10%의 기본관세를 낮추지 않겠지만 국가별 협상에서 일부 무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이어 송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최종 목표는 관세율 10%로 보이는데 한국은 비관세 장벽을 풀어주면서 10%의 관세율도 한미 FTA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며 "조선 패키지는 향후 방위비 협상 때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로 본다"고 봤다.곽 교수는 "한국은 우방국으로서 미국 투자를 하고 미국산을 더 사줘야 하는 협의로 한국 고용 문제와도 맞물린 만큼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확정적인 경제성이 판단됐을 때 참여하는 등의 조건을 붙여 약속을 하고 미국산 LNG 수입도 투자에 대한 배분으로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미중 무역합의가 한미 통상협의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미중 상호 간 보복조치 철회와 상호관세 90일간 유예 외에 추가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것밖에 나온게 없다"며 "한국에 사실상 시그널을 줄만한 내용이 없어 긍정이든, 부정이든 영향을 준다고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