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노겐·헬리코박터 동시 분석해 고위험군 선별위내시경 부담 '대체 가능성' 주목분당서울대병원, 내시경 없이 대응가능한 전략 제시
  • ▲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최용훈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최용훈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위암은 여전히 국내 암 사망 원인 중 상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조기 발견 시 생존율이 90% 이상에 이를 만큼 치료 가능성이 높은 암이다. 국가암검진제도는 이러한 치료 성적 향상에 기여해왔지만, 제도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검진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최용훈 교수 연구팀은 최근 이러한 사각지대 문제에 주목해, 내시경 없이도 위암 고위험군을 조기에 가려낼 수 있는 혈액검사 기반 선별 전략의 임상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 결과는 소화기학 국제학술지 'Gut and Liver' 최신호에 게재됐다.

    ◆ "젊다고 안심, 고령이라 미뤄" … 국가검진의 한계가 만든 빈틈

    현재 국가암검진제도는 4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2년마다 위내시경 검사를 지원한다. 이 제도는 2000년대 초반 도입된 이후 위암 조기 진단률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도의 사각지대가 두드러지고 있다.

    우선 20~30대는 제도상 검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위암 발병 전 단계에서 병을 발견할 기회를 아예 갖지 못한다. 반대로 70세 이상 고령자는 위내시경에 따른 신체적 부담이 크고, 동반질환으로 인해 검사 자체가 제한되거나 회피되는 경우가 많다.

    김나영 교수는 "젊은층은 발병률이 낮다는 이유로 제도 밖에 있고, 고령층은 현실적인 건강 상태로 인해 수검률이 낮아진다"며 "결국 조기진단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젊은 연령층에서 미만형 위암이 늘어나고, 초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 혈액으로 고위험군 선별 … '펩시노겐·헬리코박터' 병합 해석

    김 교수팀은 이러한 한계를 돌파할 방안으로 혈청 펩시노겐 수치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 여부를 동시에 분석하는 '혈청 펩시노겐 키트'를 활용했다. 펩시노겐은 위 점막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 전구체로, 위축성 위염의 진행 정도를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위축성 위염은 위암으로 진행되는 전단계 병변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위내시경과 혈액검사를 동시에 시행한 2200여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펩시노겐Ⅰ/Ⅱ 비율이 5.3 이하인 경우 위선종 및 위암 발병 위험이 유의하게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수치가 낮고 헬리코박터균이 음성일 경우 위선종 위험은 3.36배, 위암은 2.25배 증가했다.

    의외인 점은 헬리코박터균의 음성 여부가 고위험 신호라는 점이다. 통상 음성은 정상 소견으로 판단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위벽이 얇아지는 만성 위축성 위염을 방치하면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 크게 진행된 위험한 상태로 해석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헬리코박터균은 위 점막을 손상시키지만 질병이 심화돼 위축성 위염이나 장상피화생이 극도로 진행되면 위 환경이 악화돼 스스로 사멸한다"며 "이 현상을 역이용해 검사의 민감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모두 검사 아닌 '누구를 검사할 것인가' … 새로운 국가검진 전략 기대

    이번 연구는 단순히 혈액검사의 효용을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위험군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 전략'의 가능성을 실증했다는 점에서 국가검진제도의 보완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 교수팀은 앞서 발표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펩시노겐 II 수치와 헬리코박터 감염력 조합으로 젊은 여성의 미만형 위암 고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결과까지 포함하면, 혈액 기반 위암 선별검사 모델이 연령과 성별에 따라 맞춤형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김 교수는 "정기적인 내시경 검진이 어려운 고령층이나 아직 국가검진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젊은층의 경우 위암을 조기에 발견할 기회를 놓치기 쉽다. 모든 국민이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라며 "검사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에서 혈액 기반 선별전략은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현장에서 혈액검사를 통해 위암 고위험군을 가려내고 이들에게 선별적으로 내시경을 권유하는 방식은 의료비 효율성 제고와 조기진단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