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위 중심 펀드 조성 계획 윤곽 … 민관 공동 출자“AI산업 경쟁력 제고 기대” vs “실패 사례 재현 우려”“수익성·지속성 담보돼야 … 해외 사례도 참고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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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세계 3대 강국(G3) 진입’을 국정 기조로 내건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금융공약인 100조원 규모 ‘국민 펀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AI(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산업 분야에 정부와 민간이 함께 투자해 ‘한국판 엔비디아’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시장에서는 역대 관제 펀드들의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속성과 수익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정위, 국민펀드 조성 계획 구체화 … ‘한국판 엔비디아’ 육성 목표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17일 새 정부 성장정책이 담긴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 해설서를 발간하고 국민 펀드 조성 계획을 구체화했다.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국민·기업·정부·연기금 등 모든 경제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국민펀드를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데 따른 것이다.국정위가 구상한 국민펀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출자하는 모자(母子)펀드 구조로 설계된다. 정부와 산업은행, 국민연금 등이 모펀드에 출자하면 기업과 개인투자자들이 자펀드로 투자하는 형태다. 모펀드의 자금은 AI·반도체·바이오 등 미래전략산업에 투입해 국내 벤처기업을 엔비디아, TSMC와 같은 ‘데카콘’, ‘헥토콘’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국민펀드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정부 수입이 발생하면 국민 입장에서는 세 부담 경감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국정위 측 설명이다. 실제 싱가포르 국민과 기업들은 국민 펀드 ‘텍마섹’의 수익으로 지난해 기준 17.8%의 세 부담 경감을 누리고 있다. 자펀드에 투자한 국민들은 투자 성공 시 지분매각과 배당 수익도 직접 받게 된다.이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각) 캐나다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확대 세션에 참석해 “AI 혁신에 있어 민간의 역할이 크다”며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과감한 세제 혜택과 규제혁신, 국민펀드 조성을 통해 국가 전반의 AI 대전환을 추진하고 아태지역 제1의 AI 허브 구축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위도 부동산에 투자하는 자금이 국민펀드로 유입되면 가계부채 억제·집값 안정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한국 AI 산업 경쟁력 제고 기대되지만 … 역대 관제 펀드 실패 재현 우려도국민펀드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먼저 한국의 AI 산업 경쟁력 제고와 벤처·스타트업의 성장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특히 이재명 행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과 AI 산업 육성책이 시너지를 내며 김대중·문재인 정부에 이은 ‘3차 벤처붐’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도 모인다.이상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AI 공약 실현을 위해 5년간 100조원의 투자를 약속했는데 이는 그동안 주요 AI 강국 대비 투자 규모 부족이라는 한계가 있었던 한국 AI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긍정적”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은 AI 산업 육성책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3차 벤처붐의 토대도 마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상헌 iM증권 연구원도 “이재명 정부에서는 AI 세계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공공·민간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과제를 제시하며 국가 AI 투자 100조원 규모 계획과 국가 AI 데이터 클러스터 조성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며 “AI가 벤처·스타트업 등의 성장엔진으로 작동할 것이며 AI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AI 관련 각종 펀드가 조성될 뿐만 아니라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AI 관련 LP(유동성공급자) 출자사업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다만 역대 정권들이 추진했던 관제 펀드들의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문 만큼 흑역사 재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정부 주도 하의 산업 육성 계획이 성공한 것은 지난 1999~2001년 김대중 정부의 중소벤처 육성, 대만의 TSMC, 미국의 PPIP(민관합동프로그램) 등 일부에 불과하다.국내 관제 펀드들은 정권의 5년 주기와 운명을 같이하는 경향이 있다. 출범 초기에는 높은 관심을 보이다가도 정권 교체와 함께 동력을 상실하면서 수익률이 저조해지는 경우가 다수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0년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을 시행하며 K-뉴딜 지수를 추종하는 테마형 ETF(상장지수펀드)를 상장한 바 있다. 해당 종목들은 출범 4개월 동안 개인의 수급이 몰리며 코스피 지수를 아웃퍼폼(시장 수익률 상회)했지만 이후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또한 이재명 행정부의 실질적인 지원 규모가 시장의 기대를 하회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백종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표적인 정부 출자사업인 모태펀드가 지난 20년 동안 민간과 함께 조성해온 누적 금액이 약 44조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며 “경기 부양을 위한 감세안을 제시하는 등 재원 마련 수단에 대한 불확실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성·지속성 담보 필요 … 해외 사례도 참고해야”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펀드가 이 같은 실패 사례들을 재현하지 않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조성에 앞선 구상 단계에서 수익성과 지속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한 업계 관계자는 “관제 펀드의 지속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역대 국민펀드들이 정권의 5년 주기와 운명을 같이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정권이 바뀌어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스라엘의 요즈마(Yozma) 펀드 등 해외 펀드 모델을 벤치마킹해 운용 구조를 민간의 전문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요즈마 펀드는 지난 1993년 이스라엘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설립한 국부펀드다. 정부와 민간이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되 펀드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정부 출자 지분을 민간이 저렴하게 인수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특히 IPO(기업공개), M&A(인수합병) 등으로 회수 실적을 빠르게 만들며 민간 VC(벤처캐피탈) 생태계에 성장동력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다.이밖에 ‘한국판 엔비디아’ 육성 등 펀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전략적인 방향 제시, 민간 GP(위탁운용사)들의 참여 유도를 위한 출자 비율·손실보전 장치 마련 등 펀드 구조 정교화 등이 이번 국민펀드 조성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 주도하에 실행되는 펀드인 만큼 정부 출자 지분과 우선 손실 부담 구조 설계를 명확히 해야한다”며 “빠른 자금 집행 구축을 통해 투자 기업의 후속 성장(IPO·R&D 등)까지 연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