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성 차입금 6950억원 규모 … 이달에만 1835억원 만기유동성 위기에 회사채 가격 급락 … 개인투자자 손실 우려한신평 “DL·한화 지원에도 차환·만기 연장 불확실성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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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천NCC가 석유화학업계의 장기 불황과 재무구조 악화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내몰리면서 회사채·유동화증권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공동 대주주인 DL과 한화의 자금 지원으로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유동성 리스크를 해소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여천NCC는 매출채권을 담보로 3개월 만기 AB단기사채 1400억원을 발행했다. 이 중 635억원(에이치씨디제십삼차 20250530-91-1)은 이달 29일 만기가 도래하며 765억원은 오는 10월 30일이 만기일이다.

    앞서 여천NCC는 지난달 30일 만기가 도래한 655억원(에이치씨디제십삼차 20250730-92-1)의 물량 결제일을 3개월 미뤘고 100억원(에이치씨디제십삼차 20250730-92-2)도 추가로 유동화했다.

    이번 채권은 DB증권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에이치씨디제십삼차가 현대카드와 카드대금채권 유동화 참가 계약을 맺고 발행했다. 현대카드가 여천NCC로부터 받을 카드 대금을 SPC에 넘기고 SPC는 이를 기초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구조다.

    여천NCC의 회사채, 기업어음(CP), 유동화증권 등 시장성 차입금은 6950억원에 달한다. 이달에만 1835억원, 올해 안에는 38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다만 일부 회사채에는 신용등급이 BBB+ 이하의 평가를 받을 경우 강제로 상환해야 하는 조기 상환 조건까지 붙어 있다. 또한 여천NCC가 발행한 회사채 73-2회차(600억원)와 78회차(1500억원)에는 부채 비율을 40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재무비율 준수 의무도 있다.

    현재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가 여천NCC에 부여한 신용등급은 A-, 전망은 ‘부정적’이다. 등급 전망 ‘부정적’은 당장 강등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재무 상태 등에 따라 하향 조정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여천NCC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만 내려가더라도 A등급 지위를 잃어 강제 상환 옵션(트리거)이 발동하는 셈이다.

    여천NCC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회사채 가격도 급락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장내채권시장에서 여천NCC 84-2회차 채권은 1220원(-12.3%) 내린 8670원으로 마감했고 78회, 84-1회 채권도 각각 730.3원, 950.2원씩 하락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천NCC 회사채는 신용등급이 낮은 만큼 기관투자자보다 개인투자자 보유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 대주주인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이 자금 지원 과정에서 충돌한 점도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여천NCC는 최근 DL과 한화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는데 한화는 자금 지원을 결의했지만, DL 측이 워크아웃을 거론하며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는 “DL은 시장원칙과 법을 위반하고서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관철시키겠다는 의도로 부도 위기에 놓인 여천NCC에 대한 즉각적인 자금 지원을 거부하면서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며 “원료공급계약 협상에서 자신들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자 불합리한 주장을 하면서 객관적인 사실관계마저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DL은 11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입장을 바꿨다. DL은 “여천NCC의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여천NCC의 제대로 된 정상화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DL케미칼은 한화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태스크포스팀(TFT)을 통해 여천NCC에 대한 경영 상황을 꼼꼼히 분석한 뒤 실질적 경쟁력 강화 방안과 제대로 된 자생력 확보 방안을 도출해 실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양사의 자금 지원으로 여천NCC의 디폴트 위기는 일단 벗어났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한신평은 이날 오전 배포한 보고서에서 여천NCC의 차입금 중 내년 중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물량이 약 5175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오윤재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미사용 여신 한도와 유형자산 담보를 통한 차환 등으로 이 차입금에 대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차환이나 만기 연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은 확대됐다”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주주사의 지원이 확정되더라도 자체 자금조달력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현금흐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동성 대응 능력에 대한 우려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