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국내 물가 전이 가능성 … 서민경제 직격탄통화정책 운신 폭 좁아져 금리인하 기대에도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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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연합뉴스
고환율 장기화에 물가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환율 급등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체감 물가는 더 뛰어오를 수밖에 없다. 집값 불안에 고환율 여파까지 겹치면서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고착되며 고환율이 '뉴노멀'로 자리잡는 모습이다. 지난 10일 이후 장 초반 기준 1450원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을 정도로 고환율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환율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 먹거리 물가가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식품 제조업체들은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원가 부담이 즉각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실제 지난해 말 환율이 장중 1480원까지 치솟았을때도 주요 식품 가격은 환율 상승분이 반영돼 줄줄이 올랐다. 실제 지난해 말 부터 올해 5월까지 반년 동안 커피, 라면, 과자 등 주요 식품 가격을 인상한 기업은 60여 곳에 달했고 집계대상 가공식품 73개 중 52개(72%)의 가격이 상승했다. 환율 상승과 정치 공백을 틈타 업체들이 눈치보기식 인상을 이어간 것이다.최근에도 가공식품 물가가 들썩이긴 마찬가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는 전년 같은 달 대비 3.5% 뛰어 전체 물가를 0.30%P(포인트) 끌어올렸고 외식 물가도 3.0% 상승하며 오름세를 이어갔다.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올해 들어 전체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미국산 소고기 등 직접 수입품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집계한 18일 기준 미국산 소고기(갈비살·냉장) 소매가격은 100g당 4846원이다. 지난해(4511원)와 평년(3720원)에 비해 각각 7.42%, 30.26% 상승했다.최근 국내 유가도 국제 석유제품 가격 반등과 고환율의 이중 부담 속에 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유류세 인하 폭 축소까지 맞물리면서 소비자 부담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8일 오후 3시 기준 서울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리터당 1801원이다. 서울 휘발유 가격이 1800원대를 넘어선 것은 지난 2월 6일(1800.84원)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업계에선 당분간 유가 상승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산업계도 고환율 리스크에 정면을 맞닥뜨렸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원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38.17로 집계됐다. 2020년 10월(96.2)과 비교하면 무려 43.6%나 뛴 것이다. 석탄, 원유 및 천연가스, 광산품 등 원재료는 80.4%나 급등했고 컴퓨터 및 주변기기, 비철금속 등 중간재도 39.5% 올랐다. 한국은 수입 대금의 80% 이상을 달러로 결재하는 만큼 환율 상승은 원자재·중간재 가격을 끌어올리게 된다.특히 정유업계의 경우 환차손의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정유사들은 대량의 원유를 사전 확보한 후 수개월 뒤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인데, 결제 시점 환율 상승분이 환차손으로 반영돼서다. 통상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연간 약 1000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최근 수출이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착시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커지고 있는 외환시장 균형 이탈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월 16일부터 11월 1일까지 달러인덱스 상승폭은 3.1%였지만 같은 기간 환율은 6.1%나 올랐다. 엔·달러(4.6%), 달러·유로(-1.7%), 위안·달러(0.1%) 등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원화 하락폭이 가장 컸다.이에 수출 기업들의 내년 전망도 어둡다. 한국경제인협회의 '2026년 수출전망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1000대 수출기업은 내년 수출이 올해 대비 0.9%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수출이 2% 내외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로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수출을 통해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인 '수출 채산성'도 95.3%의 기업이 올해와 비슷(77.3%)하거나 악화(18.0%)할 것으로 전망했다. 개선 응답은 4.7%에 그쳤다. 주된 원인으로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비용 증가'(11.1%) 등을 꼽았다.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환율은 원가를 끌어올리면서 마진을 축소시키고 이로인해 설비 투자와 채용이 지연되는 결과를 낳는다"며 "고환율이 수출 증가 효과를 일부 가져올 수는 있지만 물가 급등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총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순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고환율은 금리 인하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미국과의 금리차가 더 벌어지고 외국인 자금 유출 압력이 커져서다. 이는 곧 원화 약세 심화와 환율 추가 상승, 수입 물가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촉발할 수 있다. 환율 변동이 물가 전반을 흔드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섣불리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기는 어려워 보인다.김대종 교수는 "한국은행으로선 물가가 여전히 높은 만큼 금리 인하에 쉽사리 나설 수 없지만, 동시에 경기 둔화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금리 동결이나 인상에 나서는 것도 큰 부담이 되는 딜레마에 놓였다"며 "미국과의 금리 차가 더 벌어지면 원화 약세가 심화될 가능성도 우려되는 만큼,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나는 시점에 단계적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