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협 선정으로 거래 성사 가능성 높아져기업가치 5조원 안팎 거론 … 가격 조율 '관건'TRS·투자 부담 놓고 양측 셈법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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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실트론
    두산이 SK실트론 인수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거래가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인수 주체가 단일화하면서 본계약 체결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매각 가격과 계약 조건 등 핵심 변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아 본계약 단계까지는 양측의 치열한 조율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전날 SK실트론 지분 매각과 관련해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SK㈜는 세부적인 매각 조건은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며, 관련 사항은 확정 시점 또는 3개월 이내에 재공시할 예정이다. 두산 또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히면서도 당사자간 협의를 진행 중에 있으나 본계약 체결 등의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공시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통상 본입찰을 거쳐 최종 협상 상대를 압축하는 단계로, 매도자와 매수자 간 가격 눈높이가 상당 부분 좁혀졌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즉, 거래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최종 가격과 계약 구조가 아직 문서로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시장에서는 SK실트론의 기업가치를 약 5조원 안팎으로 잡고, 매각 대상 지분 70.6%(SK㈜ 직접 지분 51%, TRS 19.6%)의 거래 규모는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시장에서는 최종 거래 금액이 어느 수준에서 절충되느냐에 따라 본계약 체결 속도도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SK는 올해 초 사업 재편의 일환으로 SK실트론 매각을 추진해 왔다. 지난 6월에는 국내외 사모펀드를 포함해 5~6곳이 인수 후보로 참여해 예비실사를 진행했다. 다만 매도 측과 인수 후보 간 가격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이후 매각 절차는 속도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SK가 SK실트론의 가격을 높게 받으려는 배경은 분명하다. SK실트론 매각은 유동성 위기 대응이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과정에서 추진되는 거래다. 급하게 헐값에 자산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SK로서는 매각 가격을 크게 낮춰 서둘러 거래를 마무리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반도체 업황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점, SK하이닉스를 핵심 고객으로 두고 있다는 안정적인 거래 구조 역시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방어 논리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생산 기업이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일본 시네츠화학, 섬코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다. 12인치 웨이퍼는 고성능 메모리, 로직 반도체, 그리고 다양한 첨단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활용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기준에만 SK하이닉스에 1829억원 규모의 웨이퍼를 판매했다. 상반기 전체 매출의 18% 가량을 SK하이닉스가 맡고 있는 셈이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소송이 파기환송되면서 재산분할금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점도 긍정적이다. 현금 유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급하게 대규모의 현금을 마련할 필요는 사라진 셈이다.  

    두산 입장에서도 가격을 낮출 요인은 적지 않다. 웨이퍼 사업은 인수 이후에도 대규모 설비 투자와 공정 고도화가 필수적인 산업으로, 단기간 수익성보다 중장기 투자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인수 이후에도 지속적인 자본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두산이 가격 산정 과정에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으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업황 변동성이 큰 만큼, 향후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실적 등락 가능성도 인수 가격 산정에 반영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SK실트론은 SK그룹 편입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이 우상향으로 개선되는 추세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에 부채비율과 현금창출력은 저하되고 있다. SK실트론의 설비투자(CAPEX)는 2020년 3115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9467억원으로 최근 5년간 3배 넘게 늘었다. 매해 1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데다 올해 상반기말 SK실트론의 부채비율은 157.2%에 달한다. 총부채는 3조5527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매각 대상 지분 구조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도 두산의 핵심 논리가 될 수 있다. 거래 중인 SK실트론 매각 대상 지분 70.6% 가운데 19.6%는 총수익스왑(TRS) 지분이다. TRS는 지분의 명목상 소유권은 금융기관이 보유하되, 해당 지분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손실은 계약을 맺은 실질 보유자가 가져가는 파생계약 구조다. 

    이로 인해 지분을 단순 매각하는 경우와 달리, 계약 해지 또는 승계 방식에 따라 추가 정산이나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TRS 계약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지, 정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나 정산금을 누가 부담할지에 따라 실질적인 인수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두산으로서는 이러한 구조적 복잡성을 이유로 가격 조정 필요성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29.4%가 거래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거래 이후 잔여 지분 처리 문제도 부담이다. 

    현재 두산은 경북 구미에 위치한 SK실트론 본사와 공장을 대상으로 현장 실사에 착수하며 인수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사 과정에서 장기 공급 계약이나 향후 투자 의무, 재무 구조와 관련된 추가 부담 요인이 확인될 경우, 이를 근거로 밸류에이션 조정을 요구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본계약 단계로 넘어갔지만, 가격과 조건을 둘러싼 조율은 아직 진행 중”이라며 “SK는 자산 가치 방어에 무게를 두고 있고, 두산은 인수 이후 부담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을 유지하고 있어 최종 거래 조건은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