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63개 업체에 과징금 1427억원 부과가구업계 담합 비용,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 우려관련 매출 대비 낮은 과징금에 실효성 논란
  • ▲ 건설사 발주 빌트인, 시스템가구 입찰담합 제재 현황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 건설사 발주 빌트인, 시스템가구 입찰담합 제재 현황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대단위 공동주택에 설치되는 빌트인·시스템 특판가구 입찰에서 한샘과 현대리바트 등 주요 가구업체들이 장기간 담합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다. 업체 간 담합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 등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과징금 규모가 적절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3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빌트인 3차, 시스템 2차 담합 사건 제재 현황을 발표했다. 국내 가구 제조·판매업체 48곳이 지난 2013년부터 약 10년간 건설사가 발주한 333건의 빌트인·시스템 가구 구매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벌여왔다고 밝혔다.

    통상적으로 빌트인 특판가구는 신축 아파트를 시공할 때 부착·설치되는 싱크대, 붙박이장 등 내장형 가구를 말한다. 해당 입찰은 기업간거래(B2B) 시장으로, 발주처인 건설사가 아파트 건설 현장별로 입찰을 실시해 업체를 선정하고, 선정된 업체가 가구를 납품·설치하는 구조다.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아파트·오피스텔 등에 설치되는 빌트인·시스템 가구 입찰 담합 행위를 조사해왔으며, 이번 사건까지 포함해 가구업체 총 63곳을 적발했다. 이에 따라 누적 과징금 규모는 1427억원에 달한다.

    업체별 과징금 부과 규모는 한샘이 27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에넥스 238억원, 현대리바트 233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이번 담합은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저가 수주에 따른 출혈 경쟁을 피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가구업체들은 사전에 낙찰 예정자나 입찰 가격을 합의한 뒤, 나머지 업체들이 들러리로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이어왔다.

    모델하우스 시공업체를 낙찰 예정자로 정하거나 제비뽑기 방식으로 낙찰 순번을 정했으며, 낙찰 예정자는 합의 이행을 위해 들러리 사업자에게 투찰 가격을 이메일이나 전화로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원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가구업체들은 경쟁 입찰 대비 약 5% 높은 가격에 합의했다”며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빌트인 가구 원가가 약 500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입주 예정자는 약 25만원을 추가 부담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과징금을 두고 제재 수위가 낮아 담합을 근절하기에는 부족한 것 아니냐는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빌트인 가구 설치 비용은 분양원가에 포함되는 구조인 만큼, 가구 납품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공정위가 담합 행위에 대한 과징금 한도를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에서 30%까지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이지만, 이번 과징금의 부과율은 약 3.9%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 제재를 계기로 가구 업계의 고질적인 담합 관행이 근절될 수 있도록 보다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공정위는 발주처인 건설사들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담합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과징금 규모를 산정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과징금을 부과받은 한샘은 지난해 공정위의 특판가구 담합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최종 패소한 바 있다.

    한샘 측은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이후 담합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개선책을 적용하고 있다”며 “컴플라이언스 조직 확대와 전사적 업무 프로세스 정비, 임직원 준법 의식 제고 등을 통해 윤리경영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리바트는 공정위 조치를 수용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