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랠리 속 가계·자영업 부실 확산40·50대 연체 급증 … 내수 붕괴의 경고등청년·중장년 가리지 않는 ‘빚의 뉴노멀’자산 호황과 실물 침체의 위험한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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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가 코스피 6000선 돌파 축포를 터뜨리고 반도체 수출 호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양극화 현상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붐에 기댄 반도체 수출이 독주하며 전체 수출을 밀어 올리는 사이 철강·석유화학·건설업은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격차는 고용과 내수 침체, 그리고 자산 양극화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구조적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반도체 기업 종사자들이 억대 성과급으로 함박 웃음을 짓는 사이,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 직원들은 연체와 폐업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소득자들이 삼성전자로 떼 돈을 버는 동안, 20대와 건설 등 비IT 부문 일자리는 급속하게 소멸돼 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들에 대한 융단 폭격을 가하는 동안, 전세와 월세로 사는 세입자들은 치솟는 시장 금리에 고통을 겪고 그나마 물건을 못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자리·자산·산업 전 부문에 'K자형 성장'의 괴물 같은 기형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조차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거대한 '분식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극단적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뉴데일리는 우리 경제에 퍼지는 악성의 K자형 곡선을 거시 담론과 실물 현장을 오가면서 장기 시리즈로 전한다. [편집자주]

    코스피는 6000선을 향해 치솟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체력은 그만큼 가볍지 않다. 반도체 호황과 외국인 자금이 증시를 떠받치는 사이에 빚을 감당하지 못한 가계·자영업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자산시장은 웃고 있지만, 실물경제의 그늘은 더 짙어지고 있다.

    한국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 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는 93만 5801명으로 집계됐다. 201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코로나 이전 저점이었던 2022년(73만 1428명)과 비교하면 3년 만에 20만명 이상 늘었다. 올해 100만명 돌파 가능성도 거론된다.

    ◆ '경제 허리' 40·50대가 절반 … 자영업·제조업 직격탄

    신용 부실의 중심은 한국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40·50대에 집중됐다. 전체 채무 불이행자 가운데 40대는 21만 5479명(23.0%), 50대는 22만 8235명(24.4%)으로 두 연령층이 전체의 47.4%를 차지했다. 경제활동 인구 비중을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자영업 비율이 높은 40·50대 남성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40·50대 남성 채무 불이행자는 30만 6604명으로, 4년 전보다 3만명 넘게 늘었다.

    배경에는 실물경기 둔화가 있다. 제조업은 글로벌 수요 둔화와 미 관세 압박에 직면했고, 건설·부동산은 고금리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축으로 고용과 매출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자영업자는 내수 부진과 임대료·인건비 부담을 이중으로 떠안고 있다. 매출은 줄었지만 대출 원리금 상환은 그대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2024년 말 기준 1060조원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취약 차주 비중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금리는 정점에서 다소 내려왔지만 체감 부담은 여전히 크다. 기준금리가 인하 국면에 들어섰음에도 대출금리는 은행 가산금리와 조달비용 반등 영향으로 빠르게 내려오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는 위기의 체감도가 더 크다. 신용회복위원회 서민금융지원센터에는 하루 평균 150명 안팎이 상담을 받기 위해 찾는것으로 전해진다. 상당수는 매출 감소와 고금리 부담 속에서 원리금 상환 능력 자체가 붕괴됐다고 호소한다. 집 한 채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채무 조정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자산 가격 상승이 오히려 회생의 문턱을 높이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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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층도 예외 아니다 … '빚의 사다리'가 끊긴 세대

    부실은 중장년층에만 머물지 않는다. 20대 채무 불이행자는 지난해 10만 3679명으로 사상 처음 10만명을 넘어섰다. 2021년 대비 약 26% 증가한 수치다. 생활비 대출, 학자금 상환 부담에 더해 주식·가상자산 투자 실패가 겹치며 연체로 내몰린 사례가 적지 않다.

    금융당국은 장기 연체 채권 정리와 채무 조정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속도는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새도약기금, 신용회복위원회 프로그램 등은 이미 가동 중이지만 신청 기준과 지원 범위에 한계가 있다. 단기 유예가 아니라 소득 회복과 재기 가능성을 높이는 맞춤형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흐름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과거 외환위기나 코로나 국면에서는 경기 반등과 함께 연체자 수가 빠르게 줄었지만, 지금은 산업 구조와 소득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대기업 중심의 성장과 중소기업·자영업의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며 격차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경제학계 한 교수는 "자산시장과 일부 수출 산업은 호황이지만, 대다수 가계는 소득 회복 없이 빚만 늘어난 상태"라며 "상환 능력을 상실한 채무자가 구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