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데이터센터·전기차 확산에 전력 제어 핵심 부품 수요 급증정부는 2601억원 투입, 삼성·DB·SK는 8인치 양산 경쟁SiC·GaN 부상에 장비·소재·부품까지 밸류체인 확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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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전경ⓒ삼성전자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저장은 메모리가, 계산은 AI(인공지능)가속기가 맡았다면 이제는 그 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꾸고 제어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AI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로봇이 동시에 커지면서 전력반도체가 더 이상 조연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부상한 것이다.특히 기존 실리콘 기반 반도체의 한계를 보완하는 실리콘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이 차세대 주력 소재로 부상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도 이제 메모리 밖 새 전장으로 발을 넓히는 분위기다.이번 변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수요 증가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 인상, 정부 지원, 8인치 공정 전환, 소재·장비 국산화 기대가 한꺼번에 맞물리고 있다. 전력반도체가 더 이상 틈새 시장이 아니라 정책과 투자,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몰리는 새 성장판으로 올라섰다는 의미다.◇AI 서버와 전기차가 키운 새 시장 … 실리콘 한계 넘는 SiC·GaN 부상전력반도체는 전기전자 제품 안에서 전력을 변환, 변압, 분배, 제어하는 반도체다. 전력관리반도체(PMIC), 모스펫(MOSFET, 금속산화막 반도체 장효과 트랜지스터), 절연게이트 양극성 트랜지스터(IGBT), 다이오드 등이 대표적이며, 서버 전원공급장치, 전기차 인버터·컨버터·충전기, 산업용 인버터, 풍력·태양광 설비 등으로 쓰임새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문제는 기존 실리콘(Si) 기반 전력반도체가 고전압 환경에서 효율이 떨어지고, 150℃ 이상 고온에서는 성능 저하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전기를 많이 먹고 발열이 큰 AI데이터센터와 전기차가 커질수록 기존 실리콘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진다는 얘기다.이 틈을 파고드는 소재가 SiC와 GaN이다. SiC는 실리콘보다 전력 손실이 약30% 낮고, 절연파괴전계는 10배 높다. 전기차에는 약60개~80개의 전력반도체가 들어가며, SiC는 인버터와 컨버터, 배터리관리시스템(BMS) 같은 핵심 전력 변환 구간에서 강점을 보인다. 테슬라 모델3를 시작으로 현대차, BMW, GM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SiC 채택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GaN은 결이 조금 다르다. 빠른 전자 이동 속도와 높은 전력밀도를 앞세워 고속 충전기, RF통신, AI서버용 전원공급장치(SMPS), 데이터센터 전원 회로 등에서 채택이 늘고 있다.권명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800V 직류 전력 구조를 추진하는 흐름도 GaN 수요 확대 기대를 키우는 요인"이라며 "외부의 고전압 직류를 서버 내부에서 필요한 저전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GaN 컨버터가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AI가 더 많은 연산을 요구할수록, 그 계산을 떠받치는 전력 효율 기술의 값어치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다.시장 전망도 가파르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SiC 전력반도체 시장은 2025년 40억2000만달러에서 2034년 186억1000만달러로 커질 전망이고, GaN 전력반도체는 2023년 2억7000만달러에서 2030년 43억8000만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전력반도체 시장이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SiC와 GaN은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이 기대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다. 시장이 메모리 다음 테마를 찾는 과정에서 전력반도체를 유력 후보로 보는 배경이다.◇정부는 2601억원 투입 … 삼성·DB·SK, 8인치 양산 승부수정책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AI 시대, 반도체 산업 전략’에서 전력효율과 피지컬AI 핵심 부품인 화합물 반도체 개발을 위해 2025년부터 2031년까지 2601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상용화 단계인 SiC 전력반도체의 성능과 신뢰성을 높이고, 차세대 소재인 GaN과 Ga2O3(산화갈륨) 소자 개발까지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력반도체를 단순 부품이 아니라 AI데이터센터·미래차·로봇 시대의 전략 산업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생산 인프라 구축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는 부산을 전력반도체 생산 허브로 키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8인치 SiC 공공팹 구축에 2024년부터 2028년까지 400억원, 특화단지 전용 연구개발에 같은 기간 200억원을 투입하는 계획이 담겼다. 시장이 6인치에서 8인치로 이동하는 흐름에 맞춰, 소재·웨이퍼·칩·부품으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국내에 묶어 세우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국내 기업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3년12월 전담사업팀을 신설해 전력반도체 사업 확대에 나섰고, SiC 전력반도체 제조를 위한 MOCVD(유기금속 화학기상증착) 장비도 선제 도입했다.2023년 삼성파운드리포럼에서는 2025년부터 8인치 GaN 전력반도체 파운드리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르면 올해 2분기부터는 8인치 GaN 위탁생산 라인이 본격 가동될 예정이며, 3분기에는 평판 구조 SiC MOSFET(전자 신호를 스위칭하고 증폭하는 트랜지스터) 샘플 양산 계획도 거론된다.DB하이텍은 2021년 GaN 전력반도체 시장에 진출했고, 2022년부터 8인치 GaN 공정을 개발해왔다. 2024년에는 650V 전계모드 GaN 고전자이동도 트랜지스터 공정 개발을 완료했고, 10월부터 고객사에 시험 생산용 웨이퍼를 공급했다. 자동차와 데이터센터용 전력공급장치 시장을 겨냥하고 있으며, 2026년 하반기 본격 양산이 예상된다.SK키파운드리는 WBG(와이드밴드갭) 관련 별도 R&D 조직을 신설하고 650V GaN 고전자 이동도 트랜지스터 소자 특성을 확보했다. Si 전력반도체 공정 고객사를 대상으로 650V GaN HEMT 영업에 나서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전압의 GaN HEMT와 GaN IC(집적회로)로 포트폴리오를 넓힐 계획이다.아직 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초기 시장이지만, 국내 8인치 전력반도체 시장이 이미 선점 경쟁에 들어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반도체가 아니라 종합 공정 산업 … 장비·부품·소재 밸류체인도 들썩전력반도체는 메모리처럼 칩 업체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조공정이 웨이퍼 제조, 에피택셜 성장, 산화, 포토, 식각, 이온주입, 금속 배선·박막, EDS(에너지 분산형 X선 분광기)·패키징으로 이어지는 데다 특히 SiC는 소재 강도가 높아 절단과 연마가 어렵고 에피층 형성에는 MOCVD(금속유기화학증기 증착) 같은 특화 장비가 필요하다. 전력반도체가 ‘종합 공정 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이 때문에 장비·소재·부품 업체들도 들썩이고 있다. 실제로 테스가 GaN 전력반도체용 MOCVD를 출시했고, 2025년에는 SiC용 CVD(화학기상증착) 장비도 선보였다. 티씨케이는 SiC링 수요 확대 기대를 받고 있고, 예스티는 퍼니스·어닐링·산화 장비 라인업을 바탕으로 차세대 전력반도체 공정 대응력이 거론된다. KEC는 1200V급 SiC MOSFET 개발 경험과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파워큐브세미는 국내 최초로 2300V SiC MOSFET 개발에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칩 제조사만이 아니라 장비·소재·부품 밸류체인 전반에 새 먹거리가 열릴 수 있다는 얘기다.가격도 심상치 않다. AI서버 확장과 자동차 전장 수요 증가, 원자재 비용 상승이 겹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와 전력반도체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권명준 연구원은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인 UMC, VIS, PSMC 등이 4월부터 10% 안팎 가격 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인피니언과 TI도 일부 전력반도체 제품 가격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요는 구조적으로 늘고 공급은 아직 타이트한 상황이어서, 가격 강세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이어 "AI가 더 많은 전기를 먹는 시대가 열릴수록 전력반도체 시장의 전략적 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며 "메모리 다음 승부처가 전력반도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