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전국 유독물 취급업체 설치 여부 확인 사실상 불가능
  • ▲ 콘크리트 방류벽 실험장치. ⓒ환경부
    ▲ 콘크리트 방류벽 실험장치. ⓒ환경부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기준이 대폭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최근 저장시설에서 유출사고 발생시 1차 방어벽 역할을 하는 방류벽 바닥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지만, 단 7일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설치 기준을 만드는 등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국 4000여곳에 달하는 유독물 취급업체의 화학제품 저장시설과 그 곳에 설치돼 있는 방류벽 유무는 물론, 개수 조차 파악이 안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환경부는 산하 기관인
    화학물질안전원(원장 김균. 이하 안전원)을 통해 저장시설과 방류벽 사이의 바닥에 대한 설치 기준을 만들어 공표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에쓰-오일(S-OIL)의 원유 저장시설 누출 사고 이후 토양오염 방지를 위해서다.

    특히 그동안 일반 콘크리트로 시공된 방류벽 바닥은 시설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콘크리트 강도 21MPa(메가파스칼), 두께 10cm 이상, 야외에서 28일 이상 양생(콘크리트 공사 후 충분한 보호 관리를 하는 것) 등만 맞추면 적정 시설로 인정키로 했다.

    하지만 이번 기준과 관련, 일부에서 안전성 논란을 제기하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안전원이 세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실증 실험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검증 기간이 7일에 불과해 충분한 안전성 확보가 보장되지 않는데다, 전국에 설치 돼 있는 방류벽 개수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관리나 감독이 가능하냐는 지적이다.

    방류벽이란 액체상태의 유해화학물질을 저장하는 탱크에서 유출된 물질이 사업장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저장탱크 외부 벽으로, 유출된 물질이 폐수처리장 등으로 회수되는 동안 잠시 유해화학물질과 접촉되는 시설이다.

    기존 화학물질관리법의 방류벽 기준에서는 바닥에 대한 세부기준이 미흡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에 대해 많은 이견이 많았다.

    또 기존 법에서는 화재나 폭발 사고를 막는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환경을 보호하는 기준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안전원은 실증 실험을 통해 방류벽 바닥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콘크리트의 불침투성 기준을 산업계가 쉽게 이행하면서 사고의 위험은 줄일 수 있도록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또
     세부 기준 마련으로 저장탱크를 보유한 기업체들의 부담도 대폭 줄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저장탱크를 보유한 기업체들은 질산, 염산, 황산 등 강산성 물질을 취급하는 경우 '내산페인트'를, 일반 유해화학물질은 '에폭시' 등을 콘크리트 상단에 각각 시공하고 약 5년 마다 유지관리를 해야했다.

    내산페인트의 경우 1㎡ 당 약 53만원, 에폭시는 1
     당 약 35만원의 설치·유지 비용이 드는데다, 방류벽이 야외에 설치되는 만큼, 햇빛이나 먼지 등에 노출되면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비용이 발생했었다.

    이와 달리 콘크리트의 경우 한 번 시공하면 최소 20년 이상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어 수백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안전원의 설명이다.

    사실상 기준을 완화해 준 셈이다.  


    바닥 세부기준 마련을 위한 안전검사 기간 고작 7일?
    안전원은 세부 기준을 정하기 전 콘크리트 재질의 간이 방류벽을 제작해 원유와 질산을 각각 투입하고 7일 동안 침투여부를 확인하는 현장실험을 실시했다. 실험결과, 콘크리트 재질이 불침투성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 침투된 두께는 원유의 경우 2.0cm, 질산의 경우 2.9cm로 나타났다.

    공학적인 안전율을 고려해 콘크리트 기준치 두께를 10cm로 도출했다는 것이다.

    안전원 관계자는 "실험에서는 원유의 경우 콘크리트 2cm 이하로 스며들었지만, 콘크리트 공사시 필수인 철근이 들어가는 만큼, 사실상 10cm 이하로 공사를 할수가 없다"면서 "당시 콘크리트 시공 회사와 방류벽 관련 업체들을 모두 불러 기술적 시공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결과, 콘크리트 강도를 유지하고 균열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최소 10cm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 10cm로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최소한의 두께를 기준치로 제시한 셈이다.

    또한 안전원은 학계, 민간 전문가, 산업계 등 취급시설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 협의체를 운영해 실험장비 제작단계부터 실험결과 확인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신뢰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안전원이 침투여부를 확인한 현장실험은 7일에 불과해 안전성이 충분히 보장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해물질이 유출된 이후 7일이 경과됐을 경우, 유해물질이 토양으로 스며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원 관계자는 "방류벽은 사고로 유해물질이 누출되면 이 물질이 토양이나 물로 확산되지 않도록 잡아놓는 역할을 한다"면서 "지난해 에쓰-오일 원유 누출 사고의 경우, 회수 작업에 일주일이 걸렸는데 이는 상당히 드문 일로 보통은 유해물질 누출시 하루 안에 회수가 가능해 7일간 버티면 안전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누출된 유해물질을 회수하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면, 이는 수습이 어려운 단계까지 건 것"이라면서 "이번 실험은 통상적인 수준을 고려해 진행했기 때문에 그 정도(7일)면 안전하다고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달리 업계 한 관계자는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 발생 후 7일 이상 회수가 안 될 경우 물질이 바닥에 스며들게 되면 상당히 심각한 토양 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유해물질이 토양이나 물로 확산되면 그 피해는 육안으로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3차, 4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국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 4000여개…저장탱크 개수는 "몰라"
    더욱 큰 문제는 환경부가 전국에 설치된 유해물질 저장탱크 개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지난해 기준, 3000~4000여개의 유독물 취급 사업장이 전국에 산재돼 있다. 특히 각 사업장마다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게는 수백개의 크고 작은 저장탱크를 운영중이다.

    환경공단과 안전보건공단, 가스안전공사에서 매년 유독물 취급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지만, 이들 업체가 가진 방류벽 개수 조차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기 검사는 방류벽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진행한다"면서 "전국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쓰는 사업장 모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사업장마다 방류벽이 몇 개 인지는 정확하게 집계가 안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영업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을 피하기 위해 업체들이 세부 기준에 맞지 않는 저장탱크를 의도적으로 숨길 경우, 이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유해물질 누출시 위험성이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