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전 적자 32.6조·가스공사 미수금 8.6조정부, 고물가에 상반기 공공요금 인상 자제 요청한전, 회사채 발행한도 벌써 74%…자본잠식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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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 적자와 한국가스공사 미수금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전기·가스요금에 대한 인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올 상반기에는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하겠다는 태도지만, 올해 한전의 회사채 발행한도가 이미 74%에 육박하는 등 더는 요금 정상화를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실적을 결산한 결과, 매출액 71조2719억 원, 영업비용 103조8753억 원으로 32조603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도(2021년) 적자 규모(-5조8465억 원)보다 26조7569억 원이나 늘었다.적자라고 볼 수 있는 가스공사의 미수금 규모는 8조6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0년 1941억 원이던 미수금은 2021년 1조7656억 원으로 대폭 늘었고, 지난해 다시 급증했다. 가스공사 미수금은 한전의 적자와 비슷하다. 다만, 회계상 이를 돌려받을 수 있는 자산으로 처리하기에 적자로 보지 않을 뿐이다.그동안 가스공사는 미수금이 발생해도 회계장부상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주주배당을 해왔다. 하지만 가스요금 인상으로 국민의 반발이 거세지자 재무구조 개선이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이번에는 주주배당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한전과 가스공사의 사상 최악의 적자와 미수금 발생 원인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이전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 후폭풍을 막으려고 요금인상을 억누른 것에 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데다 탈원전 정책으로 에너지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현실화를 미뤄왔기 때문이다.새 정부는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권 출범 초기부터 '전기요금 현실화'를 주장해왔다. 지난해 4월과 7월, 10월 등 세 차례에 걸쳐 ㎾h(킬로와트시)당 총 19.3원을 인상했다. 올해 1분기에는 ㎾h당 13.1원을 올렸다.가스요금은 지난해 4·5·7·10월 네 차례에 걸쳐 MJ(메가줄)당 5.47원이 인상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상 결정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졌다.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선 추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산업부가 제시한 전기요금 ㎾h당 51.6원 인상과 가스요금 MJ당 10.4원 인상안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고물가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데 있다. 올해 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2%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윤석열 대통령도 이런 점을 고려해 상반기 중 공공요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서울시도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루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올해 물가 흐름을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전망한 만큼, 하반기에 가서 공공요금을 다소 인상해도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분석한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말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3%대 중반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미수금) 폭이 커지면서 공공요금 인상을 마냥 하반기로 미루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적잖다.한전은 사상 최대의 적자를 예상하며 지난해 한전법을 개정, 회사채 발행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의 2배에서 5배까지 늘렸다. 산업부 장관의 승인이 있다면 6배까지 늘리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올해 채권 발행한도는 103조 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한전은 이미 76조10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잔액은 겨우 26조9000억 원인 셈이다. 한전이 올해 이 한도를 다 채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가스공사의 부채비율은 연결기준 전년대비 121%포인트(p) 증가한 500%를 기록했다. 별도기준으로는 전년대비 190%p 증가한 643%를 보였다.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개입해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여러가지 비효율이 발생한다. 지금 인상하는 것도 늦었다. 문재인 정부 때 인상했어야 하는 것을 이연시켜서 지금 비용이 초래되고 있다"며 "난방비나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요금 인상을 또 이연하면 추가 비용이 더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2분기에 어느 정도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