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7.69원 마감… 2015년 이후 8년만日, 정책금리 -0.1% 고수추세적 엔저에 산업계 예의주시車·전자·반도체 등 수출경합도 높아
  • ▲ 원/엔화 환율이 8년 만에 800원대로 마감했다. ⓒ뉴시스
    ▲ 원/엔화 환율이 8년 만에 800원대로 마감했다. ⓒ뉴시스
    엔화값이 8년만에 800원대에 진입했다.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장기화되면서 엔화 가치가 하락한 가운데 우리 반도체 산업이 하반기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쏟아지며 원화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한 결과다. 

    '엔저 장기화'가 추세적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산업계에선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고 있다.

    5일 원/엔 환율은 전일보다 3.9원 내린 897.69원에서 장을 마감했다. 지난달 19일 장중 엔화가 800원대에 진입한 적은 있으나 마감 기준으로 800원대까지 떨어진 것은 2015년 6월 25일 이후 8년만이다. 


    ◆ 일본, 마이너스 금리 8년 째 유지

    이날 원/엔 재정환율은 900.92원에서 출발해 900원대에서 보합세를 보이다 800원대에서 장을 마쳤다. 전일에도 장중 898원까지 하락하며 900원대를 위협했다. 지난달 19일 8년 만에 900원대를 하회한 뒤 약 2주 만에 다시 800원대에 안착했다. 같은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 보다 2.80원 하락한 1298.60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중국 경제 지표가 부진하다는 발표 속에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며 잠시 달러화가 1305.90원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이후 안정세를 되찾았다. 

    최근 엔화의 평가절하 기류는 일본 정부의 통화정책과 맞닿아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이 앞다퉈 긴축 정책을 벌이는 동안 일본 중앙은행(BOJ)은 정책금리를 -0.1%로 고수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2016년 1월부터 무려 7년 반 동안 단기정책 금리는 -0.1%, 장기금리는 0%로 유지해왔다. 

    최근 10년 만에 일본은행의 수장이 교체되며 통화정책 변화 기대감이 일기도 했으나 신임 우에다 가즈오 총재 역시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혀 당분간 이러한 엔저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에선 하반기 '반도체 반등론이' 상대적으로 원화 강세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미국 엔디비아를 주축으로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며 올 하반기 반도체 시장 회복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는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수정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마지막 시점"이라며 "엔/달러 환율이 145엔 수준을 상회하면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단행될 것"이라 내다봤다. 
  • ▲ 해외로 수출하는 상선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자료사진. ⓒHMM
    ▲ 해외로 수출하는 상선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자료사진. ⓒHMM
    ◆ 한일 경쟁품 많은데… 가격 경쟁력 '빨간불' 

    산업계에선 엔저현상 장기화에 따른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 약화를 걱정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p 하락하는 경우 한국의 수출 가격은 0.41%p, 수출 물량은 0.2%p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한국과 일본은 자동차나 전자 등 제조업 분야의 수출 경합도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아서다.

    미국과 유럽 및 아세안 등 주요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는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생긴 일본차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보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단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반면 전자업계는 이전과 달리 일본 기업과 직접적인 경쟁구도가 약해진 만큼 엔화 가치 하락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술 격차도 커 엔저 가치 하락에 따른 제품 경쟁력 하락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제품의 경우 해외 생산기지에서 생산되고 있어 엔저 영향을 덜 받는데다 달러 기반의 결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일본내 판매 비중도 적고 수입하는 제품군도 극히 일부분이어서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도 "주력인 메모리반도체 부문은 사실상 세계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곳이 없다"며 "달러를 주 결제 통화로 삼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엔화 약세가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과 일본의 세계시장 수출 경합도지수가 2011년 0.475에서 2021년 0.458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양국의 수출 구조가 차별화되면서 엔저 현상이 국내 기업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보다 감소했다는 게 무역협회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