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10개월 만에 최저BOJ 완화정책 지속엔화예금 잔액 86억달러"내년에야 900원대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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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超)엔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 16일 장중 850원대 초반까지 떨어지는 등 856.8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08년 1월 10일 855.47원 이후 15년 10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17일 장 시작과 함께 0.12% 가량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860원대 아래인 859.41원에 머물렀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 하락은 더 심각하다. 이달 들어 1달러당 151엔을 지속 상회하고 있는데, 1990년 7월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인 151.94엔을 넘어설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그간 900원대 내외에서 등락을 거듭했던 원‧엔 환율은 이달 들어 하락세에 속도가 붙었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확연한 둔화세를 보이자 "긴축(금리인상) 종료" 기대감에 원화 강세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14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2% 올라 시장 예상치(3.3%)를 하회했다. 변동성 높은 식품,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도 시장 예상치(4.1%)보다 낮은 4.0%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긴축 종료 분위기에도 '외딴 섬' 마냥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경쟁력 강화 효과를 포기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환율 변동에 대응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엔화 약세로부터 긍정적인 효과는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완화하기 위해 가계 부담을 완화하는 경제 패키지를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수출품목이 상당수 겹치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엔화 가치 하락 시 경제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 7월 한국무역협회는 엔‧달러 환율 10% 상승 시 수출금액이 0.1% 감소하며, 수출물량도 0.86% 축소시키는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과거처럼 엔저에 심대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진 않다. 삼성‧현대차 등으로 대표되는 기업들의 기술력이 향상돼 과거 '싼 가격'을 경쟁력으로 삼던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엔저 현상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에 대비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3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이 -0.5%를 기록해 3개 분기 만에 뒷걸음치면서 일본중앙은행(BOJ)이 당분간 통화 완화 정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편, 원‧엔 환율이 바닥을 쳤다고 보고 엔화를 부지런히 사서 모았던 '엔테크족(族)'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조만간 반등을 예상하고 890원~900원 사이에서 엔화를 대거 매수한 이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엔테크족들이 늘었다는 점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엔화 예금 잔액은 86억 1000만달러로 2012년 6월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도 지난 3일 기준 1조 1110억엔(약 9조 6700억원)으로 작년 말 잔액(6832억엔) 대비 4278억엔 증가했다.

    이와 관련 시장 전문가들 엔화 가치가 일부 엔테크족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800원대 초반까지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까진 엔화 약세가 지속돼 850~900원 사이에서 움직이다 내년 900원대 안착이 유력하다는 평이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엔화 반등 가능성은 높고 내년엔 900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나, 일본 경제 펀더멘털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기대 수익률은 높게 예측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