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 첨단 기술 중무장젠슨황 소개한 로봇 파트너사 6곳이 中국내 스타트업 156개사 CES 혁신상 받아… 전체의 45%CTA의 국가별 혁신성장 평가서도 '이노베이션 챔피언상' 수상삼성전자 'C랩', LG전자 '노바' 등 대기업 혁신 육성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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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현장.ⓒ이가영 기자
반도체·전자 산업을 담당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무어의 법칙’을 알게 되었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의 공동 창립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한 이론으로, 반도체 집적회로의 트랜지스터 수가 약 24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칩 기술의 발전으로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배로 늘어난다는 의미이다.이는 반도체 업계의 성경과도 같은 말로, 50년 이상 산업을 아우르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초반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며 반도체 산업의 발전은 지속되어 왔다.이번 CES 2025에서 본 중국의 기술 굴기(崛起·우뚝 일어섬)는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가·카피캣(copycat·모방품) 공세를 펼치던 중국 기업들은 올해 앞다퉈 최첨단 기술을 선보이며 예상보다 훨씬 빠른 혁신을 이룬 것을 증명했다. 뉴스와 신문 등을 통해 접했던 그들의 기술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중국이 후발주자가 아닌 한국과 동등한 경쟁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TV 등 가전 제품은 이미 겉보기에는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로봇과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한국을 앞서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특히 생활로봇과 휴머노이드 등을 비롯한 로봇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최고 혁신상을 받은 하이퍼셸의 외골격 로봇 ‘카본X’를 필두로, TCL의 인공지능(AI) 개인비서인 ‘에이미’, 유니트리의 로봇개와 휴머노이드(G1), 로보락의 팔 달린 로봇청소기, 바둑을 두는 로봇, 수영장 청소 로봇 등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로봇 업체 대다수가 중국 기업들이었다.실제 올해 CES의 백미로 불렸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기조연설에서도 로봇 파트너사 14개 중 중국 업체가 7곳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4곳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한국 기업은 전무했다.중국의 로봇 산업은 산학연 연계가 원활해 생태계 확장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자본 유입 규모가 커서 단기간에 ‘스타 기업’이 탄생하는 구조라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대학의 교내 벤처에서 탄생한 기업들은 물론 기존 다양한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연구개발(R&D) 확대 등에 힘입어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다.덕분에 그 어떤 나라보다 로봇 분야에서 빠르게 입지를 키워가고 있다. 기술적·비용적 문제로 무어의 법칙 속도가 최근 둔화하는 추세라면, 중국의 기술 굴기는 다양한 분야에서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이렇게만 보면 국내 기업들의 상황이 절망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의 CES 혁신상 결과에 따르면, 현재까지 총 345개사 가운데 한국 수상기업이 156개(45.2%)를 차지했다. 국가 순위로는 1위였다. 한국 기업은 특히 AI(32개·57%)와 디지털 헬스(27개·55%) 분야에서 과반을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최고혁신상 35개 중에서도 16개로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수상했다.아울러 한국은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이노베이션 챔피언상’도 받았다. CTA는 2018년부터 각국의 기술 혁신 역량을 평가해 국가별 글로벌 혁신 성과 지수를 산정하고 그 결과를 CES 기간에 발표하고 있다. 2023년 평가에서 두 번째 그룹인 리더스 그룹에 속했다가 이번에 한 단계 올라섰다.국내 대기업들은 이러한 기술 혁신 생태계를 앞장서 이끌고 있다. CES에 참가한 한국 스타트업 중 최소 37개사가 국내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전시관을 꾸렸다. 라스베가스 베네시안 엑스포에 있는 스타트업 전시관 유레카 파크에서는 삼성전자 ‘C랩(C-Lab)’ 소속 스타트업, LG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NOVA), 현대자동차그룹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플랫폼 ‘제로원’ 등이 마련됐는데, 여기에서는 이들이 지원을 받아 성장한 헬스테크·클린테크·AI 등의 혁신 스타트업들을 대거 볼 수 있었다.취재 도중 만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지원을 받아 CES에 참가하게 됐다”며 “기술 상용화와 관련한 피드백, CES 부스 지원 등 셀 수 없는 지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류 지원을 하고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했지만 삼성의 지원이 없었으면 사업 현실화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중국의 기술 굴기 속에서도 국내 대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끊임없는 혁신 노력이 희망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대기업들은 단순히 시장을 선도하는 것을 넘어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같은 협력은 신생 기업들이 기술을 상용화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의 기술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정부 또한 산학연은 물론이고 대기업의 스타트업·신기술 투자와 관련한 지원 및 세제 혜택 등을 적극 확대하고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 한국 또한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을 혁신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