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당국 수장들 '대출금리 낮춰라' 한목소리은행들 "대출 문턱 낮추라면서…자율규제 혼란"토지거래허가제 해제에 금리인하까지 '엇박자 정책'
  • ▲ 시중은행 전경ⓒ연합뉴스
    ▲ 시중은행 전경ⓒ연합뉴스
    정부의 가계대출 관련 지침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뒤집히면서 은행권이 혼란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에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했지만 최근 금리 하락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토허제) 등으로 집값이 들썩이자 다시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하고 있어서다. 은행들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규제를 바꿔가며 압박하고 있어 일관성 있는 대출 관리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오는 28일부터 유주택자의 투기지역(강남 3구와 용산구) 내 주택 매입 목적 신규 대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해당 지역에선 무주택자인 경우에만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나은행 또한 오는 27일부터 서울지역에 한해 '유주택자의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및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의 신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서울 지역에 한해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 취급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SC제일은행도 오는 26일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생활 안정 자금 목적의 주담대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처럼 최근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서둘러 높이고 있는 데에는 지난 17일 금융당국이 주재한 '가계부채 점검 회의'에서 당국 관계자들이 서울 강남 3구 등 주요 지역의 주택 거래 증가와 가격 상승 현상을 우려하며 '매수 심리 확산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당국 관계자들은 "시장 과열 상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대출 규제 조치를 시행해달라"고 협조를 구하면서 "당분간 가계대출 가산금리 인하 요청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서울시의 토허제 해제 후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지며 대출 수요가 증가했고 금융권이 주담대 공급에 나서면서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앞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이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 인하 압박과 상충된다.

    지난달 24일 김 위원장은 "이제는 대출금리에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할 때가 된 것 같다"면서 금리 결정이 시장 원리에 따라 이뤄지는지 점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원장도 같은달 25일 "작년 10월 이후 세 차례 인하된 기준금리가 가계·기업 대출금리에 파급된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겠다"고 은행권 가산금리 조사 방침을 내비쳤다.

    은행권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리가 내려가면 대출 수요가 늘어나는 당연한 논리를 거슬러 대출 취급을 조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등을 타깃으로 하는 규제에 대한 소비자 불만 등도 은행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가 가장 강력한 조치인데 현재는 쓰기 힘든 카드"라며 "지난해처럼 섹터별, 수요자별로 은행 스스로 대출을 제어하라는 소리인데 은행 만으로는 가계부채를 틀어막기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일관성 있는 대출관리 정책을 운용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시기별 쏠림이 없도록 연초 분기별 대출 수요를 예측하고 물량 관리 계획을 세우는데 규제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시중은행권 관계자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은행이 너나 할 것 없이 대출 가산금리를 서로 낮추고 문턱을 낮추는데 혈안이었는데 바로 이렇게 상황이 달라져 버리니 가계대출 목표치를 조절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으면서 책임을 은행에 넘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